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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Feb 19. 2024

원인 불명의 증상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려고 하는데 양손 열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 오므려지지가 않았다. 잠깐 멈칫하며 천천히 손을 오므렸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 만지며 통증이 있나 살폈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그 후 하루 동안 아무 이상 없이 지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또 손가락을 접을 수가 없었다. 역시 아주 천천히 한번 접고 났더니 그다음에는 접고 펴는 일이 수월했고 또 하루를 별 이상 없이 지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또 그랬다.

아프지 않은 데다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손가락이 뻣뻣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 매일매일 아침에만 잠깐 '왜 이러지? 휴대폰을 너무 봐서 그런가?' 하고는 또 잊었다. 그런 현상이 한 달쯤 지속되었을 때 고지혈증으로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들렀다. 의사에게 물으니 "퇴행성 관절염이 시작된 거 같다"면서 타이레놀을 처방해 주었다. 아플 때마다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통증이 심하지 않아서 한 알도 먹지 않았다. 통증이 없으니 의사가 한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설 연휴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데 손가락이 또 접히지 않았다. 그제야 심각하다고 느꼈다. 30대 초반에 류머티즘을 앓은 적이 있어 얼른 뜨거운 물에 담그고 손가락 관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더 자세히 살펴봤다. 양손 검지 손가락이 약간 휘어 보였다. 아주 미세하게.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진짜 휘어진 건지, 그렇게 봐서 그래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 후 수시로 손가락을 따듯하게 했다. 잘 때 손을 살짝 주먹 쥐듯이 하고 잤다. 한 손가락씩 폈다 접었다 운동을 수시로 했다. 그랬더니 아침에 오므리기 어려운 정도가 좀 약화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3개월째 이 상태다.  정형외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토요일에 가려고 했더니, 동네 병원이 주말엔 휴무였다. 그런데 아쉽지 않았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가끔 무릎이 아프다. 어느 날은 계단을 오르다가 아프고, 어느 날은 쭈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면 아프다. 그래도 병원 갈 마음은 들지 않고 운동으로 풀어야겠다며 스트레칭을 열심히 한다.


어느 날부터 이가 시렸는데 통증을 말하자면 1 정도라서 심하지는 않다. 언제부터 이가 시렸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2주일쯤 되었다. 치아 시린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더 심해지기 전에 치과 예약을 했다. 스케일링 한 지도 1년이 넘어 겸사겸사 갔다.  스케일링하기 전에 이가 약간 시리다고 했더니, 일종의 마취제라면서 가글을 하라고 줬다.  스케일링 후에 의사가 바람을 쏘이며 어느 부위가 많이 시린지를 점검했다. 가글 한 탓에 이가 덜 시린 것 같다고 했더니, 의사는 큰 문제는 아니라는 듯 2-3주 더 지켜보고 그래도 시리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어서인가 이가 덜 시린 듯도 하다.


일상생활에 크게 방해되지 않고 통증이 약해서 무심코 넘기는 증상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렇게 무심히 보낸 시간을 따져보면 2주, 한 달, 3개월 이런 식으로 꽤 시간이 쌓여 있는 걸 깨닫고 놀라게 된다.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이리 오래되면 병원에 가야지 싶은데, 선뜻 가지는 않게 된다.


누군가가 노화는 중도 장애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몸 여기저기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병원에 가도 노화현상이란 소리만 들을 것 같다. 노화가 질병은 아닐 텐데, 노화현상이라고 들으면 바로 수긍이 된다. 별 치료약은 없고 진통제, 소염제만 줄 것 같다. 부모님이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라고 하시며 병원에 안 가시는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들었다고 갑자기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진단을 내리게 된다. 약 먹고 나을 병과 약 먹어도 낫지 않을 병을 구분한다. 민간요법으로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처치해 본다. 이러다가 손가락 관절 어디가 완전히 붓거나, 걷지 못할 정도의 심한 통증이 오거나 하면 병원에 가겠지! 그렇게 될 때까지 놔두는 걸 미련하다 여겼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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