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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14. 2024

언젠가는 멋진 예술가

극단 선배가 인스타에 올린 내 그림에 갖고 싶다고 농담 같은 댓글을 달았다. 그때는 인사치레 말이려니 하고 넘겼다. 도화지에 습작처럼 그리던 과정을 지나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쌓인다. 화실에 다 둘 수 없어 집에 몇 점 걸고 동생들에게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면 가져가라고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억지로 가져가지 말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져가라고 했다. 내 그림이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은 각자 원한 그림을 몇 점 가져갔지만, 바로 밑의 남동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서운하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져가 내동댕이치는 것보다 나았다. 회사 후배인 다희와 윤지한테도 넌지시 물어보았다. 둘 다 직접 그림을 보고 하나씩 가져갔다. 윤지는 내가 처음으로 그린 아크릴화를 골랐는데 어설픈 그림이었다. 잘 그린 그림이 아닌데 정말 가져가겠냐고 했더니 보라색 숲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희는 노을 바다를 그린 그림을 골랐는데, 그 그림은 윤지가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었다. 다희가 붉은색이 강렬해서 좋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그림을 주며 “버리면 안 된다”라며 신신당부했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수십 시간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이라 차마 내 손으로 버릴 수 없을뿐더러 쓰레기로 버려진다면 정말 가슴 아플 것 같았다.

      

그렇게 내 그림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한테 몇 점을 주었다. 혹여 언젠가 버려진다 해도 방구석에 쌓아놓은 채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나았다. 그러다 극단 선배의 댓글이 떠올랐다. 진짜로 갖고 싶다고 하면 선물하리라 마음먹고 연락했는데, 진심으로 갖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인스타에 올라갔던 그림 중 하나를 딱 찍어서 말했다.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밤하늘색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림값으로 저녁을 사겠다는 말과 함께. 내 그림이 좋다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지고 광대가 올라갔다. 극단을 탈퇴한 단원이 운영하는 인사동 한식집에서 만나 선배에게 장난처럼 당부했다. “선배, 제 그림 보시다가 혹시 싫증 나더라도 버리지 말아 주세요” 선배는 웃으며 “우리 집사람이 그림 전공한 사람이야. 함부로 버리지 않지”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전문가가 옆에 있는데 이런 아마추어의 그림을 걸어도 되냐고 했다. 선배는 “느낌이 좋은 그림에 프로, 아마추어가 어디 있어. 너도 전시회 해. 그림이 팔리면 프로지”라며 “이렇게 약소하게 밥값으로 때우는 내가 고맙지”라고 했다. 그 말에 힘이 좀 났다. 구도부터 원근감, 명암 표현하는 일 등이 늘 어려워 화실 선생님에게 “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낙담 어린 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화실 선생님의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항상 위로하기 위한 말로 들려 믿음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 와중에 선배의 후한 말이 고마웠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화가가 되려는 욕심은 없다. 취미로 그리되 좀 잘 그리고 싶다. 창작하고 싶다. 창작품으로 2차 작업물을 만들어보고 싶다. 내 독창성(originality)을 가진 물건을. 지금껏 순수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그린 창작품이 두 개다. 둘 다 극단 활동으로 희곡을 읽다가 장면이 떠올라 그걸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하나는 조명 오퍼로 참여했던 희곡이었고, 다른 하나는 배우로 참여했던 희곡이었다. 배우로 참여했던 작품은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마커와 색연필로 표현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해당 연출에게 보여줬더니 그 그림으로 포스터를 제작하자고 하여 참 기뻤다. 포스터가 극장 앞에 붙었을 때 실로 감개무량했다. 그 그림을 물건 제작해 주는 플랫폼에 올려 머그잔, 쿠션 등을 만들어 공연에 함께 참여했던 연출, 배우, 스태프에게 선물했다. 그 후 희곡에 영감을 얻어 창작품을 그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그림 세계가 생길 것 같았다. 그걸 이해하는 관람객도 생기고. 하지만, 일상에 밀려 실천하기 쉽지 않다.

    

코로나 시기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 토큰, 디지털 자산 소유 증명서) 등이 등장하여 세상이 격변하는 것 같았다. NFT로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도대체 NFT가 뭔가 궁금해서 공부하다 그림을 디지털로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극 포스터로 만들었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원화 그대로의 모습과 색 보정을 한 사진 두 개를 플랫폼에 올려봤다. 놀랍게도, 플랫폼에 올린 지 30분도 되지 않아 그림이 둘 다 팔렸다. 각 30,000원에 올렸는데 구매자가 같은 사람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구매자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실물이 아닌 파일로만 그림을 갖는 건데 왜 돈을 주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구매자는 내 그림을 아주 터무니없는 판매가에 내놨다. 무려 300만 원에 내놓은 것이다. ‘내 그림 가치가 이 정도가 되나?’라는 의구심이 들며 또 다른 구매자가 나타나나 주의 깊게 봤지만 당연하게도 없었다. NFT는 창작자가 누구인지 소유자가 누군지 추적할 수 있고 그림이 재판매되면 창작자에게 인세처럼 수수료가 정산된다. 그런 면에서 무명작가에게 기회가 되는 일임은 틀림없었다. 한편 무언가 신기루 같은 그 현상을 보며 ‘애초에 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했어야 했나?’라는 헛된 욕심이 슬며시 들었다. 일상이 회복되면서 가상 세상을 향한 관심이 덜해졌지만, 메타버스는 점진적으로 지속 발전할 것 같다. 아직 내 그림은 NFT 거래 플랫폼에 올라 있다.     


문자를 그림으로 구현하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미드저니(Midjourney) 등 AI 프로그램이 여럿 등장했다. 2022년 게임 디자이너가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갑론을박이 있었다.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은 붓을 들지 않았을 뿐 본인의 생각을 지시어로 수백 번 입력하여 만들어 낸 결과이므로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 그 그림은 디지털 예술 부문에서 1위를 했기에 상이 박탈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AI 로어머신(Lore Machine) 이 등장했는데 최대 3만 단어씩 총 10만 단어의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단편소설, 대본 정도 분량의 글을 80개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다고 하는데 희곡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해 보려던 시도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그림은 나보다 AI가 훨씬 더 잘 구현해 낸다. 더 멋진 이미지를 보여준다. 가끔 잘 그리려고 노력하는 일이 무슨 의미일까 허탈할 때가 있다. 특히 그릴 때마다 어렵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더 그렇다. 한편으론 유명 화가들도 밑그림 등 보조자가 있다고 하고 백남준 비디오 작가도 그가 구상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설치 기술자가 필요했듯이 AI는 그런 보조자, 기술자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백남준 아티스트와 일했던 기술자가 백남준의 작품을 본인 작품이라고 하지 않는 건 상상의 영역은 작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AI는 그런 ‘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활용해보고 싶었다.     


마침 그때 극단에서 가을 페스티벌 공연 포스터를 맡아 달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작품이 무려 여덟 작품이었다. 출, 퇴근길과 점심시간 등 틈날 때마다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다. 각 작품의 연출에게 작품을 대표하는 오브제(object/상징물)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8개의 오브제를 직접 그릴까 하다가 시간이 부족하고 잘 그릴 자신이 없어서 각각의 오브제를 AI 프롬프트(prompt)에 넣었다.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라는 이미지 생성 AI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120회 수정해야 했다. 어떤 것은 금방 나왔는데 어떤 것은 아무리 해도 엉뚱한 그림을 보여줬다. ‘무료로 이용해서 이런 제약을 걸어놓은 건가?’ 싶을 정도로 지시어와 딴판인 이미지였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유리구두를 입력했는데 평범한 신발이 나왔다. 유리로 만든 구두라고 풀어썼더니 유리구두였지만 투명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겨우 원하던 유리구두 이미지를 얻었는데 한 짝만 나왔다. 프롬프트에 두 짝이라는 지시를 해도 한 짝만 나왔다. 말을 못 알아듣는 벽창호 같았다. 그래도 직접 그리는 것보다 시간 절약이 되었다. 어렵사리 얻은 8개의 이미지를 흑백으로 바꾸었다. PPT에 콜라주처럼 얹혔다. 그걸 인쇄하여 종이에 색연필로 바탕을 칠했다. 포스터의 콘셉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연이란 의미였다. 연극은 글자를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저 문자로 존재했던 것을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 공간, 물체로 변신시키는 마술이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색깔이 없던 각 작품의 흑백 오브제가 생명을 얻고 빛이 나는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 야근하고 집에 가서 색연필로 칠하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고 회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A4용지에 완성된 포스터를 사진 찍어 디지털 파일로 만들었다. 웹 포스터를 무료로 만들 수 있는 사이트에서 공연 일자, 장소 등 필요 정보를 텍스트로 얹혀 완성했다. 포토샵을 쓸 수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손이 좀 고생했지만 만족스러웠다. 극단 공연 예매 사이트에 대표 이미지로 올라간 걸 보자 뿌듯했다. 공연 당일 극장과 주변 담벼락에 붙은 포스터를 보자 자랑스러웠다. 연출, 배우 등 참가자들이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고, 고맙다고 해주어 나도 고마웠다.     


그림을 그리며 극단 활동을 하며 나름 내린 예술은 이렇다.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수 있는 것”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 한, 그걸 표현하려는 욕구가 꺼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멋진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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