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을 잘 다니지만, 연극은 혼자 잘 보러 가지 않았다.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 무대(스크린)에 집중하다가 나오는 행위는 영화와 다르지 않은데, 이상하게 연극은 혼자 가지 않게 된다.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극단 사람들과 단체 관람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연극을 볼 수 있어 좋다. 가끔 꼭 보고 싶은 연극이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으면 혼자 간다. 아주 가끔.
남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공연을 같이 보는 것이었다. 데이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광화문 연가’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공연 관람 후 그는 “난 보는 건 별로야, 무대에 직접 서는 게 좋지"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도 연극을, 무대를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다. 두 번째로 위키드(wicked)를 보러 갔다. 공연 시간이 임박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했더니 오는 중이라고 했다. 도저히 공연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영화든 연극이든 중간 입장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공연 시간에 늦게 오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났다. 마음 한편에서는 ‘기다렸다 같이 들어가야 하나?’ 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 입장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공연은 정통 내한 공연이었고 국내 초연이었다. 그에게 표를 맡기고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공연장에 앉아 눈은 무대를 향하고 있었지만,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늦게 오는 그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늦게 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혹시 중간휴식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버린 건 아닐까?’, ‘아예 오다가 중간에 돌아간 건 아닐까?’ 등등 오만가지 잡념에 빠져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가 중간휴식 때 들어왔지만, 난 이미 공연 관람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위키드는 어떤 공연이었는지 내 뇌리에 남지 않게 되었다. 줄거리도 음악도 하나도 모른다. 그 후 그와 몇 편의 공연을 더 봤지만, 그는 자기가 무대 체질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제야 알아들었다. 그는 공연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한테 맞추려고 했다는 것을.
그와 헤어지고 무엇엔가 몰두할 일을 찾다가 문득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관객이 아니라 무대에 서는 게 체질"이라던 허세 쩔던 말이. ‘막상 무대에 서지도 못할 거면서 허세는!’ 하는 뒤틀린 마음에 ‘내가 무대에 직접 올라가 볼게, 난 너처럼 말만 하지 않아’하며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평소 연극을 좋아했고 대학 시절 방송국 동아리 활동으로 몇 번 무대에 선 경험이 있으니 못할 거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객기 어린 마음으로 동네 연기학원에 등록해 6개월을 다녔다. 기본적인 몸 움직임, 발성하는 법에 대해 배웠는데, 같은 반 수강생은 연극영화과를 목표로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었다. 학원에 등록할 때 입시생을 위한 수업이므로 진도를 내게 맞출 수 없다고 하길래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마흔 넘은 여자가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 학생 틈에 끼어있으니 물 흐리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나를 전혀 개의치 않았고 눈치를 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내가 눈치를 봤다. 몸 움직임 선생은 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화술 반 선생은 약간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하지만, 다 알면서도 묵묵히 버티며 다녔다. 나로서는 1주일에 두 번씩 퇴근 후 뭔가에 정신을 쏟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일단 뭐든 시작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처음에 껄끄러워하던 화술 반 선생이 관심 두고 가르쳐주었다. 바닥을 뒹굴고 기어가는 등의 몸 움직임도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그 학원에서는 6개월 과정 끝에 강의 별 수업 발표 시간을 가졌다. 화술반 선생이 나더러 반 대표로 발표하라고 했다. 어린 학생들이 많은데 좀 놀라고 의아했다. 선생은 “6개월 동안 잘 따라 하고 열심히 하셨다”라고 하며 응원해 주었다. 아마도 잘해서라기보다 열심히 한 모습을 높이 산 것 같았다. 학원 원장부터 주요 귀빈(?), 강사, 학생들 앞에 섰다. 작은 무대였지만 무대는 무대였다. 떨렸다. 학원 원장은 나이 든 수강생이 발표하는 모습이 의외라는 듯 내가 무대에 서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운 대로, 연습한 대로 시를 낭송했다. 유일하게 끝까지 외우는 시를, 연기하듯이. 연습보다 못했지만 어쨌든 해냈다.
칭찬을 듣는 일은 역시 나이와 상관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선생은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연극에 관심 있다면 아마추어 극단이 많으니까 그런 곳을 다녀보는 건 어떠세요?"라고 했다. ‘와, 그런 곳이 있구나!’ 전혀 알지 못했던 아마추어 극단이 있다는 말에 검색을 해봤다. 전국적으로 그렇게 많은 아마추어 극단이 많은 것에 깜짝 놀랐다. 어떤 극단은 꽤 오랜 역사가 있었고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근로자 연극제]에서 상을 휩쓴 극단도 여럿 있었다. 그중, 동네에 연습실을 갖춘 직장인 극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직장인 극단에 가입했다. 12명인가 같이 입단했다. 입단하면 바로 워크숍 공연을 한다. 그때 너무 용기가 나지 않아 배우는 하지 않고 스태프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6개월 수업을 들었다 해도 무대에 설 자신이 없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너무 떨렸다. 대사를 외울 자신도 없었다.
입단동기 전부 배우를 하는데 스태프라니. 신입이 할 수 있는 스태프 일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보조자로(보조라 쓰고 구경꾼이라 읽는다) 조명 오퍼 실에서 동기들의 공연을 봤다. 다들 너무 잘했다. 입단 동기들은 연기가 처음이라고 했는데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연습할 때, 공연할 때 보면 그들은 처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끼’가 문제였다. 내게 없는 ‘끼’. 워크숍 공연이 끝나자 몇 명의 동기가 탈단했다. 한번 무대에 서봤으니 소원성취했다는 것이었다. 한 번쯤 동경하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희망 사항(wish list)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지금은 직장인 극단은 물론 주민참여 구립극단, 실버극단, 일회성 프로젝트 연극 공연단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경로가 많아졌는데 그만큼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저변층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극단에서 6개월을 보내며 봄 정기 공연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희곡 읽기’ 소모임에서 매주 한편씩 작품을 읽자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서서히 차올랐다. 전 남친 말에 오기로 극단 생활을 시작했지만, 배우 될 마음은 솔직히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극단 선배들이 “극단에 들어왔으면 배우는 해봐야죠. 우리 극단은 단원이 많아서 매번 배우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신입 단원에게 기회 줄 때 한번 해보세요”라며 가을 정기 공연에 참여하라는 말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희곡을 읽으며 무대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내가 배우라면 어떻게 연기할까를 궁리하던 때여서 정말 겁 없이 덥석 그 권유의 말을 물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연기는 서툴다 못해 경직된 모습으로 연출, 조연출은 물론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각자 캐릭터를 공부하고 연습해서 가는 건 줄 몰랐다. 연습실에 모여서 그때부터 연습하는 건 줄 알았다. 연출이 다 가르쳐주는 건 줄 알았다. 완전히 해맑게 무지한 상태였다. 그 후 나름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왜 그 대사를 하는지 고민하려고 했지만 대사 외우기에 급급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의 딸이 다니는 회사의 악덕 과장, 전단 나눠주는 학생 두 역할이었다. 두 역할을 합해 단 두 장면에 등장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역할이었다. 그런데도, 무진장 부담스러웠다. 극단의 정기 공연인데, 극단의 명예에 누가 될 것 같아 도망가고 싶었다. 과장은 대사가 좀 많았다. 주인공의 딸을 괴롭히는 장면으로 엄청 얄밉고 못되게 말해야 했다. 머리로 분명 왜 그 과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고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했다. 감정을 충분히 담아 아주 독하게 말했다. 하지만 연출팀은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은 너무 굳어있고 표정 변화가 없다고 했다. 내 딴에는 진짜 눈에 팍 힘주고 노려보며 아주 세게, 비아냥거리며 말했는데. 연출은 “너무 착하게 살아서 그렇게 말할 줄 모르는 거 아니에요?”라며 농담했다. 이런 기회에 못되게 말해보라며. 연극이 그래서 좋은 거라며. 착하게 살아서 못하는 게 아니라 평생 무표정하게, 감정 표현하지 않고 살아서 그게 어려웠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은 왜 다 무표정하냐는 말을 했는데, 나도 그 한국인 중의 한 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뜩이나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운데, 연습실에 공연 관계자 몇 명만 있어도 그 앞에서 대사하고 움직이는 일이 너무 어색하고 떨리고 창피하고 오글거렸다. 양팔을 가만히 내려놓고 연기하라는데 차렷 자세로 뻣뻣하게 있기 일쑤였다. 유난히 땀이 많이 났던 그해 여름, 퇴근하면 연습실에서 밤 11시, 12시까지 연습하고 주말에는 5~6시간씩 연습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배우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도 포기하면 혼자 욕먹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모든 연습을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만 시간의 법칙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3개월 정도 연습을 하고 나니 대사 톤, 표정, 동작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연기가 괜찮아졌다는 연출팀 평가에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공연일이 되었다. 이틀간 총 4회 공연. 환하게 웃는 연출의 얼굴을 첫 공연 후 처음 봤다. 선배들의 표정도 밝았다. 공연 작품의 극작가가 관람했는데, 잘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며, 아주 만족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최소한 ‘나 때문에 공연을 망치지는 않았구나’하는 안도감. 인생 첫 무대라는 의미와 연습하며 쌓인 자신감으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팀원들에게 공연 보러 오라고 초대했다. 모두 무대에 선 내 모습이 낯설었다며 신기해했다. “참 재미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아마추어라고 보기에는 정말 완성도 있었다” 등등 공연 전체 감상평이 좋아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1인 2역 한 나를 몰라봤다는 지인의 말에 어깨가 으쓱했다. 엄마는 재밌다며 두 번이나 공연을 보셨다. 친구들은 “너 회사에서 그렇게 못된 팀장인 거 아니니?”라며 농담했다.
공연을 마치자, 연극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관객이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희열이었다. 요즘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over-the-top,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것) 서비스로 영화, 드라마 등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한 번이다. 같은 작품이어도 매회 다른 공연이다. 관객이 다르고 그들이 보내주는 에너지가 다르다. 배우의 컨디션, 리액션(reaction)에 따라 다른 연기가 나온다. 거기에 배우, 관객, 조명, 음향까지 누구 하나 실수하지 않고 모두가 집중한 공연이라면 재미와 감동이 넘치는 잊을 수 없는 공연이 탄생한다. 중, 고등학생 시절 배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지만, 내가 직접 무대에 설 줄 몰랐다. 다분히 치기 어린 마음으로 시작한 극단 생활은 내 안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영역의 일을 해냈고 재미까지 느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