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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곗거리

2025. 1. 12

by 지홀

올해 첫 연극을 관람했다.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내 무덤에 너를 묻고"라는 작품이다. 매년 신춘문예 희곡부문 등단작가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 "봄 작가, 겨울 무대"의 일환으로 올려진 연극이다. 연극을 볼 때 미리 줄거리나 배경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 간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관람 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나중에 찾아서 본다. 드라마, 영화는 배우와 작가, 감독까지 관심 있게 보고 고른다. 줄거리를 몰라도 좋아하는 배우, 작가, 감독의 작품이라면 믿고 보는 편이다. (20대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그런데 연극은 희한하게 아주 유명한 연출가, 작가, 배우가 아닌 한 잘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20~30대 때는 작가, 연출, 배우의 이름을 잘 외웠다.) 영화, 드라마 보다 더 어떤 이야기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연극 관람 후 인상 깊었던 배우의 이름을 뒤늦게 찾아보고 알게 되는 편이다.


이 연극도 배경 지식 없이 관람했다. 배경은 조선인데 현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초반 얘기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빗댄 것처럼 느꼈다. 흥미를 돋우는 도입부였다. 그런데 중반부는 거의 못 봤다.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하더니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잠깐씩 눈이 떠졌을 때, 눈을 부릅뜨려고 했지만 다시 감기를 반복했다. 연극 후반부가 되어서야 잠이 깼다. 중간 얘기를 다 놓쳤다. 연극을 좋아하고 시간을 겨우 만들어 봤는데 이렇게 맥 빠지게 잠을 자다니, 허무하다. 이런 현상이 가끔 일어난다.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코 없던 현상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어떻게 공연을 보면서 잘 수가 있나'라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에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오늘따라 유독 화실이 추웠다고, 추운 데서 그림 그리느라 따뜻한 극장에 들어가자 잠이 온 것이라며 애써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소나무와 하늘(11:54, 11:58)


확대해서 찍고보니 태양 주변에 먹구름과 흰구름의 대비가 신비롭다(14:3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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