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바쁘게 이것저것 다하면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을 때는 시간여유가 있다는 걸 알고 더 느리게 움직인다. 심지어 움직이기 싫다는 생각마저 든다.
엄마가 아침을 차리시자 굉장히 여유로워졌다. 나만 챙기면 되는데 여유가 아주 많다고 늑장 부리다 화실에 30분이나 늦게 갔다. 12시까지 가야 하는데 12시에 집을 나섰다. 늦게 가는 만큼 그림 그리는 시간이 줄어들므로 제시간에 가야 하지만 '내 시간 줄어드는 거니까 뭐 어때'하는 마음이 생겨 느긋하게 갔다. 걸어서 10분,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가는 곳인데 화실 가는 길에 하늘 사진 찍고 여유 부리다 30분이나 걸렸다. 늦었는데 더 늦게 갔다.
집에 돌아와 따듯한 방에서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씻지 않아 어정쩡하게 앉아서 책을 봤다. 재빨리 씻고 옷 갈아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면 되는데 옷만 갈아입고 씻기 싫어 미적댔다. 내가 저녁을 차려야 할 때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피곤했는데, 막상 몸과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게으름을 피운다. 게으름이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누워서 자거나 쉬면 피로가 풀릴텐데 움직이기 싫어 앉아 있으니 피곤하다. 씻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이므로 눕지 못한다.
집안일, 엄마 돌봄을 할 때는 회사일도 열심히, 회사 가는 일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내일 회사 가기 싫다. 무려 열흘 쉬고 회사 가려니 더 싫다. 관성의 법칙인가. 마음과 몸의 여유가 생기니 계속 놀고 싶은. 그런데 이 여유란 게 겨우 어제 토요일에 생긴 건데 불과 이틀 만에 놀고 싶은 관성이 생기는 것일까?
PS. 관성의 영어가 이너티아(inertia)인데, 이너티아의 어원이 '게으르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iners'라고 한다. 어원을 보니 움직이고 싶지 않은 게으른 나의 상태가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