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2025. 2. 1

by 지홀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겠다고 하셨다. 뭘 할까 고민하시길래 동생이 명절에 보내온 소고기가 있어 불고기를 하자고 했다. 밥통의 밥은 30시간이 넘은 거라 볶아먹자고 했다. 엄마는 메뉴가 결정되자 한결 편해하셨다. 엄마가 하실 수 있나 옆에 있으며 도와드리려고 했더니 한사코 가서 쉬라고 하셨다. 하지만 옆에서 과일 깎고 상 차리고 불고기 소스를 넣는 등 서성거렸다. 음식이 다 되고 식탁에 아빠와 셋이 앉았다.


밥맛이 계속 없던 나는 오늘 아침도 그냥저냥 먹을만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맛있게 드셨다. 엄마는 드시던 대로 퍼드렸는데 좀 드시더니 밥이 많다고 덜자고 하셨다. 밥을 두 숟가락 정도 덜어, 더 드시고 싶어 하는 아빠에게 드렸다. 엄마는 "이상하게 맛이 없네. 그동안 먹은 것 중 제일 맛없어"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해서 그런가 봐요"


낮에 극단 일을 보고 저녁에 집에 가니 엄마는 배고파서 떡국을 끓여 드셨다고 했다. 나에게도 밥 하기 싫으니 떡국을 먹으라며 끓여주셨다. 나는 엄마에게 고기 구워드릴 테니 고기만 드시라고 했다. 엄마가 떡국을 다 하신 후에 내가 등심구이를 했다. 참기름에 마늘을 볶다가 고기와 양파를 넣고 구웠다. 타지 않게 중불에서 굽다가 약불로 했다. 엄마는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다고 하셨다. 고기를 다 구워 깻잎에 싸드시라고 식탁에 놓았다. 남동생이 명절에 가져온 무생채와 열무를 같이 놨다. 엄마는 한 점을 드시더니 "어떻게 이렇게 잘 구웠냐?"라고 하시며 아주 맛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네가 끓인 떡국 맛이 생각나서 내가 끓였는데 맛이 없었어"라고 하시며 시무룩해하셨다. 나는 "진짜 남이 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나?"라며 엄마와 실없이 웃었다.


엄마는 "내가 딸네집에 와서 딸 살림하는 것처럼 손에 익지 않고 아주 어색해"라고 하셨다. 불과 두 달 손을 놓으셨을 뿐인데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웃으시며 "희한해. 왜 이렇게 생전 음식 한번 안 하던 사람처럼 이러지?"라고 하셨다. 두 달간 내 스타일대로 주방의 질서를 잡았으니 엄마 손에 익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점점 엄마가 하던 대로 하시면 익숙해질 일이라고.


씻고 입고 먹는 것을 내 스타일대로 엄마에게 해드렸고 그대로 받으셨던 엄마는, 이제 스스로 해야 하는 때가 되자 헷갈려하고 계시는 것 같다. 하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곧 엄마 자신만의 스타일로 찾아가실 거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제법 따듯했던 날(14: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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