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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2025. 1. 31

by 지홀

두 달, 딱 8주 만에 엄마가 깁스를 푸셨다. 왼팔 수술한 후 6주 만이다. 뼈가 잘 붙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젠 재활운동을 집에서 수시로 하라고 했다. 내심 병원에서 물리치료받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집에서 어떤 운동을 하면 되는지 알려줬다.


깁스를 푸는데 보기에도 무서운 도구가 동원됐다. 보호자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밖에서 들으니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들렸고 톱같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마치 쇳덩어리를 자를 때 쓸법한 소리가. 환자가 소리에 놀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주의사항대로 놀라지 않고 계시기를 빌었다. 몇 분이 흐른 뒤 깁스를 풀고 나온 엄마의 팔은 쭈글쭈글했다. 넘어졌을 때 까졌을 것으로 보이는 딱지가 팔뒤꿈치에 까맣게 붙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 길로 목욕탕에 갔다. 키오스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는데 여기도 기계로 해야 하냐며 혼자 못 오겠다고 하셨다. 샤워기 앞에서 비누를 건네며 직접 씻어보시라고 했다. 물을 틀어드렸는데 자동으로 꺼지자 왜 물이 자동으로 꺼지냐고 물으신다. 나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엄마는 "아니, 여기 샤워기 물은 금방 꺼지네"라고 하셔서 안심했다. "다시 키면 되죠"라고 했더니 "어떻게 하는 거지?"라고 해서 진짜 놀랐다. 매일 에어로빅을 하셨고 운동 후 샤워하고 집에 오셨는데 두 달 하지 않으셨다고 잊어버리신 거다. 샤워기를 다시 틀어드리며 '그럴 수 있다'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럴 수 있다. 매일 하던 행동도 두 달쯤 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있다. 곧 다시 익숙해지실 거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세신사에게 때를 밀었다. 양팔 깁스를 오늘 풀어서 조심히 해달라고 요청드렸다. 세신사는 팔은 대충 했으므로 딸이 더 닦아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아프게 건드릴까 봐 너무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엄마에게 더 닦고 싶어 하시는 곳을 물어보고 팔, 목 뒤, 엉덩이 밑살 부분을 닦아드렸다. 엄마는 때수건을 달라하시더니 혼자서 살살 더 해보겠다고 하셨다. 목욕을 다 마친 후 수건을 드렸는데 가만히 서 계셨다. "엄마 이제 엄마가 닦아요. 할 수 있어요" 했더니 그제야 엄마는 "아, 내가 할 수 있지. 난 못하는 거 같아서 계속해달라고 서있네"라며 웃으셨다.


엄마는 집에 오시더니 "저녁은 내가 차려볼게" 하셨다. "그동안 딸이 고생했으니 쉬어"라고 하시며 내가 하려고 준비했던 두부조림을 하셨다. 나는 덕분에 오랜만에 손톱을 깎았다. 엄마가 일상을 찾으셨다. 팔이 완전히 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지만 양치하고 머리를 빗으실 수 있다. 왼손에 아직 힘이 없지만 과일을 천천히 자르시고, 설거지도 하실 수 있다. 물컵을 들고 드실 수 있다. 이런 일상 동작을 다시 하실 수 있어 정말 좋다.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 느끼며 두 달간 갑갑한 시간을 견딘 엄마도, 수발을 다 들었던 나도 참 수고했다. 대견하다.

종일 눈 온 날의 흐린 하늘(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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