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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눈

2025. 3. 18

by 지홀

아침 8시 즈음에도 눈이 계속 내렸다. 대설까지는 아니지만 옆집 지붕에, 전선 위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출근길이 미끄러울까 봐 걱정했는데 막상 집을 나서니 길 위의 눈은 많이 녹고 없었다. 그래도 무심코 내디딘 발걸음에 찌익 넘어질까 봐 발가락과 종아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걸었다. 경사진 주택 골목길을 벗어나자 눈이 말끔히 치워졌다. 그리고 눈앞에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한옥 지붕과 나무에 쌓인 눈, 그 위로 새하얀 구름이 사방으로 뻗쳐있고 구름 사이사이 비친 파란 하늘이 정말 예뻤다. 바쁜 출근시간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덕분에 하차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까지 또 뛰어갔다. 9시 세이프.

눈 쌓인 풍경과 하늘의 구름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08:34, 08:36, 08:36)


퇴사한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회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새로 생긴 구내식당 형식의 식당이었다. 단품 요리와 뷔페 음식 중 선택할 수 있고 가격은 8,900원으로 괜찮았다. 이제는 만원 이하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뷔페는 메뉴가 많지 않았지만 야채, 고기, 국물이 골고루 있었고 무엇보다 야채를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고기도 너비아니, 찜닭으로 두 종류였고 밥은 잡곡밥이어서 집밥 같았다. 문득 얼마 전 애정하며 봤던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그거 아세요? 다른 가게들은 다 '가게'라고 하는데, 밥집만 '집'이라고 하는 거? 생선가게, 과일가게, 화장품 가게 다 '가게'라고 하는데 '밥가게' 들어보셨어요?"


남자주인공은 밥은 집이랑 제일 잘 어울리고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만든 그 마음까지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식당을 '밥집'이라고 한다. 음... 술집, 빵집, 떡집 등도 떠오르는데 술가게, 빵가게, 떡가게라고 불러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술가게'가 약간 어색하긴 하다. 암튼,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만든 사람의 정성까지 느끼면서 먹어 본 적은 별로 없지만, 음식 맛이 결국 정성이 들어간 맛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내식당 형식의 식당은 맛 좋고 실내가 깔끔하고 가격도 좋아서 앞으로 자주 찾을 것 같다.

구름의 변화 (08:37, 12:23, 14:38)

후배와 찻집(아! '차 가게'라고 안 하고 찻집이라고 한다)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주제로 수다를 떨다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지 않은 얘기로 넘어갔다. 충격적인 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결과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한숨이 나왔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하셨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이 증오, 폭력을 조장하는 선동 어린 막말을 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3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달이 될 것 같다. 모든 국민의 눈이 한 곳에 쏠려있다. 어떤 결말이 나든 부디 평화롭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눈 온 뒤 갠 하늘(14:38, 14:38)

3월에 내린 눈이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날씨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온 지구의 문제다. 그리고 날씨만큼 이례적인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쟁, 몰상식, 폭력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상식, 포용, 관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은 3월의 역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을 가리고 이용하려 하지 말고, 두려워했으면 좋겠다.

강렬한 선셋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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