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9
작년에 드라마 "감사합니다"가 있었다. 회사 내 비리를 밝히는 감사부서 직원들의 얘기였다. 마침 감사 업무를 할 때라 관심 가는 드라마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는 못하고 이따금 봤다. 그 무렵 드라마 내용보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장난을 쳤다. 우리 팀은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로 말해야 한다고. 고맙다는 인사가 아닌 "감사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며 우리끼리 웃었다.
감사업무는 좋은 말로 궁금증,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나쁘게 보면 의심에서 시작한다. "왜 이랬을까?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무슨 의도일까?" 심증이 생기면 증거를 찾는다. 대부분 결재 문서가 증거다. 품의, 지출결의서에 첨부된 문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 다만 각각의 문서를 볼 때는 잘 모른다. 이들 문서 간 상호 어떤 관계인지를 확인해야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꽤 걸린다. 물증이 확보되면 해당 직원과 사실여부를 확인한다. 때로 문답식 확인도 한다. 확인 작업이 끝나면 처분요구서를 작성해 해당 부서에 조치하도록 협조를 구한다. 처분요구서에는 위반 관련 규정, 지침을 명시하고 위반내용을 적시한 후 처분 종류를 적는다. 제일 어려운 부분은 어떤 규정과 지침을 위반했는지를 찾는 것이다. 방대한 내용을 다 외우고 있지 않으므로 몇 조, 몇 항인지 찾아야 하고 위반에 따른 처분내용도 어떤 근거에 따라 조치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흡사 판결문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 위반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보편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건이 있는데 이 경우는 관련 규정, 지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개 위법은 아니지만 편법을 쓰는 경우로, 개인을 지적할 수 없기 때문에 제도개선을 요구한다.
1년간 짧게 일한 감사업무가 이 회사의 마지막 일이 되었다. 어쩌면 직장생활의 마지막 업무일지도 모른다. 그간 겪지 않았던 아주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사람의 심리, 행동양식을 배우고 나의 고정관념을 깨친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내게 감사업무는 약이 되는 땡큐 업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