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3
2년 전, 회사 후배가 같은 팀에서 일하는 직원의 아내가 쓴 책이라고 선물을 줬다. 대개 주변에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하면 받기는 하지만 잘 읽지 않게 된다. 미루고 미루다 읽는 책은 그나마 양반이다. 어떤 책은 몇 년 후 책장에서 발견하고 도무지 내가 샀을법한 책이 아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버린 적도 있다. 선물 받고 읽지 않는 이유는 무명인이 썼기 때문일 거다. 기대되지 않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가 '한번 읽어볼까'하며 손댄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십 년 전에 같은 팀에서 일하던 직원의 아내가 쓴 육아일기 형식의 에세이였고, 하나는 2년 전에 그 후배가 준 책이다.
육아일기 형식의 에세이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입장에서 감정이입까지 하기는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중간에 남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보는 것 같아 어색하면서도 일터에서 볼 수 없는 면모를 알게 되어 그 직원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두 사람은 전 직장 동료로 만나 결혼했는데, 아내가 출산 후 산후 우울증을 좀 겪는다는 말을 지나가듯 한 적 있다. 아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중이라고도 들었다. 그런데 그 블로그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일련의 얘기들을 정말 스쳐 들었다. 한 팀에서 일했지만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았기에 내 안중에 깊이 자리하지 않은 직원이었다. 그 직원이 아내가 쓴 책이라고 선물해 줬을 때, 반갑게 받기는 했지만 펼쳐 볼 생각은 잘 못했다. 만일 읽어보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재미있고 웃기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그 직원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그는 '좋은 사람'이다. 비록 일하는 건 나와 영 맞지 않지만. 후속작이 나온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물어봤더니, 아내가 글 쓰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대신 검도를 열심히 하고 있으며 '단' 승급 시험을 본다며 시험장에 따라다니느라 힘들다고 했다. 그녀는 우울증을 털어버린 것 같고 그 사이 아이들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었다.
2년 전에 읽은 책은 장애인 남편과 비장애인 아내의 연애, 부부얘기다. 장애인 남편은 1년 전에 퇴사했는데 다른 팀 직원이어서 오며 가며 눈인사만 한 사이다. 제대로 말을 해 본 적 없고, 밥을 같이 먹어본 적도 없지만 항상 말끔한 차림에 휠체어를 타는 분이라고만 여겼다. 책을 읽고 나서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걷기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가는 것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체장애인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거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와 결혼 후 이혼을 결심했던 아내의 심정, 그리고 다시 '사랑'을 깨달으며 함께 하기로 한 비장애인 아내의 얘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울었다. '이건 찐 사랑이야'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바로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다. 책을 재미있게 잘 읽었노라고. 그 직원에게도 아내분의 책을 잘 읽었다고 전했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요즘은 두 사람이 더 부럽다. 자비가 아닌 출판사의 기획으로 책을 낸 자체로도 부럽고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럽다. 만일 내가 책을 낸다면 주변의 반응은 "축하한다"라고 말은 해도 읽을 생각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랬듯. 책 선물을 해도 읽지 않을 것이므로 사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건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나처럼 어쩌다 한가한 시간에 문득 선물 받았던 책을 떠올리고 읽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진한 감동을 받는다면 금상첨화일 거다. 하하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김칫국 한 사발 들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