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4
엄마 휴대폰이 오래되어 속도가 느리고 빨리 방전되고 충전 케이블은 잘 맞지 않는다. 드디어 교체시기가 된 것이다. 엄마 인생 최초 휴대폰이니 벌써 십 년 가까이 사용하신 거다. 헉. 십 년! 오래 쓰셨다. 처음엔 전화통화만 하시다가 문자 하는 법을 배우시고는 톡을 많이 하신다. 사진 찍는 걸 가르쳐드렸지만 뭘 찍지는 않으신다. 듣고 싶어 하시는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드리면 보시는 방법을 안다. 간혹 다른 채널로 넘어가도 곧 찾으신다. 최근에는 앱테크 몇 곳을 알려드렸더니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했다.
마침 KT에서 가족이 쓰던 폰 이어 쓰는 이벤트를 하길래 내 폰을 엄마에게 드리고, 내 폰을 바꿀까 하다가 가격대가 너무 비싸 망설이고 있었다. 동생한테 저렴하게 휴대폰을 살 수 있는 곳을 물었더니 최근에 휴대폰을 바꾸어서 남는 전화기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최신 기종으로. 잘됐다 싶어서 동생으로부터 휴대폰을 받아 데이터를 옮겼다. 꼬박 이틀이 걸렸다. 사진, 연락처 등의 자료는 금방 복사되었지만 로그인을 새로 해야 하는 곳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일단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애 먹었다. 하도 휴대폰을 봤더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게다가 이 과정을 엄마폰도 똑같이 해야 한다니. 물론 엄마는 로그인해야 하는 앱이 몇 개 없지만.
이 참에 잘 쓰지 않는 앱은 회원탈퇴를 하고 삭제했다. 일회성으로 가입했던 곳, 왜 가입했는지 기억에도 없는 앱,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앱을 정리하고 카톡에 있는 연락처를 살펴보며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기억나더라도 더 이상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일로 만난 사람'도 지웠다. 그때그때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살았는데도 미처 정리하지 않은 것들이 꽤 눈에 띄었다. 정리를 너무 하지 않아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있다. 사진첩이 대표적이다. 매년 폴더를 만들어 외장하드에 별도 저장했는데 그러지 않은 지 2년 가까이 된다. 휴대폰 갤러리에 사진이 너무 혼재되어 폴더를 만들어 분류하기 시작했지만, 너무 많다. 거기에 추억 돋는 사진은 두고두고 보려고 계속 남기는데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추억을 먹고살지만 옛날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보다 미화되는 것 같고 과거보다는 현재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것들은 미화된다고 하는데 일부 맞는 말이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은 애써 수면 아래로 가둬두고 꺼내보지 않으니 점점 더 잊는다. 휴대폰에 수없이 깔았던 앱을 세월이 지나 잊어버린 것처럼. 효용을 다한 것은 더 이상 들춰보지 않게 된다. 대신 즐거웠던 기억은 자꾸 얘기하게 되므로 기억이 새록새록 더해진다. 더해지면 더 미화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사진, 연락처, 앱을 다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것처럼, 저 지하 바닥에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나기도 한다. 상처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치유된 일은 얼마나 감사한 지.
시간은 약이라는 말이 맞지만, 시간에 사람의 노화가 더해지면 그 약효가 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부모님을 보면 그렇다. 아주 오래전 일을 되새기며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다"라고 후회하신다. 그 당시 상황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고 잘 살았고 잊었던 일인데, 이제와 돌이켜보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라는 후회 어린 말씀을 하신다. 과거의 일에 가정법으로 대입하며 들춰보는 일이 현재의 삶에 도움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고 때로 화가 난다. 과거를 교훈 삼아 현재와 미래의 실수, 잘못된 판단을 줄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르는 일에 애면글면 하는 일이 안쓰럽다.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완전히 기억에서 없애버리는 일이 나을지도 모른다. 회원탈퇴하고 앱을 삭제하듯이. 두 번 다시 볼 기회가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