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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05. 2015

삽질

생전 처음 삽질한다는 말을 들었다. 

"삽질이 뭐예요?" 그 말을 내뱉은 남자 직원에게 물어본다. "아~네~ 그건 한  곳을  열심히 삽질하다 보면 우물이라도 나온다는 말이에요~" 진지하게 설명해주는 직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직원이 농담한거고 그 말은 '헛짓'을 의미함을 알았다.


군대 가면 삽질을 많이 시킨다고 하는데, 구덩이를 팠다가 그 구덩이를 다시 메꾸는 반복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다가 우리가 일하면서 쓰는 '삽질하다'라는 말의 유래가 거기에서 나온 것이구나 싶었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헛 짓.


비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도 않은 삽질은 왜 하는가? 대개는 윗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하거나 갑의 위치인 누군가가 원해서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대부분 비슷한 문제점과 개선책을  생각해낸다.  그 문제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어 이들을 같이 해결하지 않는 한, 겉으로 드러난 한 두 문제만 개선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그런데 근본 원인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고 현상만을 보고 접근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근본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조언하지만, 조언으로 받지 않고 일을 하지 않기위한 핑계로 받아들인다. 근본 원인에 귀 기울이고 실패한 사례를 거울삼아 잘해보겠다는 사람도, 그 실패한 경우를 개선책으로 내며 해보라고 한다. 본인은 자신있다고. 남들은 못했지만 내가 하면 다르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그 자신감은 카리스마로 포장되어, 때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둔갑하여, 삽질을 하게 한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띄어 구덩이가 여럿 있거나, 구덩이를 메꾸는 작업을 하여 평평한 땅으로 돌아가 있다.


다른 경우는 아주 열심히 일하지만 일의 순서를 몰라 일을 두 번 하게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하는 일이다. 도무지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는 일, 효율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일을 한다고 밤까지 새지만, 그 밤샘 자료를 정작 보스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상.  한 번으로 부족한 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매번 반복하는 삽질! 그래 놓고 밤새워 일했다고 뿌듯해한다.  본인만 삽질하면 좋은데 옆에 있는 사람까지 삽질하게 만든다. 삽질인 줄 알면서 삽질할  수밖에 없는 슬픈 을, 병, 정.


이렇게 삽질을 수년하고 나면 이 일이 삽질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네~ 원하시는대로~"를 말하는 예스맨이 되어, 이 일이 되는 일인지 안되는 일인지, 사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가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는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그들을 탓하기만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난 힘이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어, 의사결정자가 따로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 갈 곳도 없으니 난 참을 수 밖에 없어... 이렇게 패배의식과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에 대한 사명감과 보람은 잊은 지 오래된,  변한 나를 본다.

그리고 최악의 모습으로는 변하지 말자고 다짐해 보지만, 회사 생활을 하는 한 그게 가능할까? 다른 이에게 삽질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벌써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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