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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철학

2025. 8. 8

by 지홀

정혜신 작가의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북 토크쇼에 다녀왔다. 작가의 책을 읽은 적 없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는 건 알고 있다.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주변에서 작가의 북 토크쇼에서 힐링하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울컥하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많았다고 하여 궁금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눈물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어느 때는 시도 때도 없이 포인트가 정확하게 눌리지 않았음에도, 그 주변만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겉잡을 수없는 눈물을 쏟아낼 때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안으로 삭히며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여기지만, 저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어둡고 우울한 덩어리가 문득 툭 움직여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외치듯 머릿속을 점령하며 나를 잠식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곳에서 나도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나면 마음이 좀 정화될까? 여행 다녀온 후 많이 안정된 마음이 다시 흔들리며 나를 통제 불능의 어두운 세계로 데려갈까?


토크쇼에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작은 서점 겸 카페가 꽉 찼다. 책에 대한 사전지식 하나 없이 그냥 들었다. 작가의 말, 참가자의 사연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심정을. 어떤 이는 말하면서 울컥해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타인에게 전염되었다. 어떤 이는 유쾌한 표현으로 좌중을 웃겼다. 서슴없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움찔’한 순간이 있지만, 동화되고 공감하는 것보다, 이상하게 머리는 차갑게 식어, 어느 순간 내가 객관적인 마음으로, 제삼자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공감을 나누는,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이렇게 서로가 낯선 곳으로 와야만 가능한 걸까?’하는 부분이었다. 친구든 동료든 가족이든 가까운 사람에게 속내를 전달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다. 그렇게 어려워진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어느 날 여러 사람에게 회자하기 시작한 ‘감정 쓰레기통’이란 표현이다. 내 고민과 부정적 감정을 털어놓아 상대마저 기분 나쁘게 만들고 감정 노동하게 만드는 건 민폐라는 의미의 이 말은 사람을 더욱 고립된 섬으로 만든다. 평소 서로에게 일어났던 스트레스 상황을 하소연하고 수다 떨며 풀던 동료가 말했다.

“아, 이제 이런 말은 그만, 네가 내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 힘들고 우울한 얘기는 여기서 그만.” 나는 어리둥절했다. ‘엇! 그럼, 앞으로 나도 속상했던 일을 말하지 못하는 거야?’

즐겁고 기분 좋은 얘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얼마나 겉도는 관계일까? 고민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사이가 진정 가까울까? 갑자기 친한 동료를 잃은 기분이었다. 동료는 말했다.

“그러니까 다들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고 정신과 의사한테 가는 거야. 그들의 직업은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직업이니까.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도 불쌍해. 아무리 돈을 받아도 남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물론 내가 마치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일 때가 있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상대를 만났을 때. 내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자신이 힘들 때는 한 시간, 두 시간 하소연과 불만을 털어놓고 돌아서면 끝이다. 상대방은 마치 나와 둘도 없는 사이인 것처럼 타인에게 말하고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사주며 환심을 산다. 그러나 내 얘기는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과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속내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놈의 ‘감정 쓰레기통’이란 말이 ‘친한 사람이 듣고 기분 나빠질 나의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어 관계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이렇게 모두가 처음 보고 다시 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공감받고 공감하며 눈물짓게 되는 것일까? 과연, 작가가 말하는 공감은 그런 것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며 떠올라 참가자들 얘기 속으로 빠지지 못했다. 아주 덤덤해져 작가의 말조차 공허하게 들렸다. 질문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정리되지 않았다.


토크쇼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갔지만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각, 조용히 일어나 작가의 책을 한 권 사고 나왔다.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그녀의 책을 펼치고서야 이 책이 작가가 오래전 출간했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필사하는 책이란 걸 알았다. ‘아하, 그래서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구나. 정말 사전지식 하나 없이 그냥 후기만 듣고 덜렁 가다니’ 한심했다. 책은 술술 넘어갔다. 짧은 글귀들이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내내 떠나지 않던 의문이 해소되는 글이 거기 있었다.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정혜신,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32쪽


감정적 교류,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것. 그렇다. 관계는 상호 작용이다.


‘내가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과는 절교한다. 일방적 관계이므로.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오해할까 봐 망설이고 염려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나도 상대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므로. ‘감정 쓰레기통’이란 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서로의 어렵고 힘든 마음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사람은 앞으로도 내 옆에 있을 사람이다. 주변 사람이 자연스럽게 분류된다.


어떤 편견 없이 나를 나로 봐주는 최고의 사람은 심리 상담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완전한 타인이지만 그들에게선 지속적인 심리적 안정감을 지원받지 못한다. 일상에서 내게 집중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흔들리고 아프고 때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도, 기운 차리고 버티고 견뎌낼 수 있다. 작가의 책은 그런 사람이 되도록 ‘공감’을 하는 법을 알려준다.


#정혜신 #손으로읽는당신이옳다 #북토크

지각하면 안되는데 사진찍고 있다. 아침 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갔고 시원한 바람마저 분다.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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