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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뷰잉

2025. 9. 25

by 지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말은 20년 전부터 들은 것 같다. 특히 마케팅에서 스토리텔링은 아주 중요하다. 제품, 상품을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가 스토리텔링이란 것이다. 요즘엔 스토리를 넘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유할 수 있는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브랜드의 세계관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에게 해당된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보이그룹 BTS가 그렇고 심지어 사람도 물건도 아닌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SM도 세계관이 있다. 팬은 세계관을 이해하기에 열광하고 몰입하고 이해하고 용서한다.


얼마 전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이 시대를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스토리셀링의 시대라고 말하며 점점 서사는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스토리가 아니라는 말에 '띵'했다. 이야기는 사유와 경청을 통해 서서히 쌓이며 투명하게 모든 걸 밝히거나 설명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의 사생활 기록은 그저 디지털 세상에서 '좋아요'를 유도하는 즉흥적인 콘텐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콘텐츠를 통해 아주 빠르게 타인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이란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콘텐츠가 사유를 동반하지 않는다. 빠르게 보고 잊는다. 드라마, 영화, 책도 2배속으로 보고 남이 짧게 편집한 것을 보고 스토리를 다 안다고 말한다. 인물의 표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 그 사이에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 행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저자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시리즈물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형식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빈지워칭(Binge watching), 즉 생각 없는 시청이 시리즈 소비를 특징짓는다. 관찰자는 소비가축처럼 살찌워진다"라고.


그는 서사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세상에 올리는 '찰나의 삶의 기록'은 데이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로 보이는 삶은 그 무엇도 담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디지털 세상의 모든 것을 학습하다가 결국, 특정인간의 행동패턴을 익혀 '비서'역할을 한다는 세상이다. AI는 내가 할 법한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겠지만, 내 안의 열정, 고민, 망설임, 경험, 충격을 알 수 없다. 나만의 서사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로 가득 찼으나 텅 빈 디지털 공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 136~137쪽
빈지워칭은 빈지뷰잉(binge viewing)이라고도 하며 짧은 시간에 여러 시리즈를 보는 것으로 정주행 개념의 신조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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