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문제적 왕자님≫ 작가 솔체 제176화
여주인공 에르나의 할머니인 바덴 남작부인의 말
"나는 에르나의 새 삶에서 가능한 한 멀리, 희미한 존재로 남아 있고 싶어요, 대공. 그리 오래지 않아 떠나게 될 내가 그 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해요.”
“물론 나는 아직 욕심이 많아요. 대공과 에르나의 아이도 보아야 하고, 그 애가 걸음마를 떼고, 나를 할머니라 불러 주는 그날도 고대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있는 목숨은 없는 법이니 언젠가 그날이 왔을 때 에르나 곁에 남은 내 빈자리가 지나치게 크고 선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육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힘듦이든 심각한 심신의 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않게 된다.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는 이에게 내가 겪는 괴로움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반면에 감기, 소화불량, 손가락에 난 사마귀처럼 약 먹고 치료하면 괜찮아지는 질병은 위로해 달라고 응석을 부리며 가볍게 말한다. 친구와 다투고 회사에서 받은 소소한 스트레스도 험담을 늘어놓으며 얘기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힘든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다분히 이기적이다. 나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나'를 먼저 생각해서다. 내 몸과 마음을 건사하는데 집중해야 하므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느라 나아진 척, 괜찮아진 척 위선을 떨고 싶지 않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얘기는 나만큼 아프지 않을 사람에게 하게 된다. 완전한 타인, 적당한 거리를 둔 지인에게는 오롯이 아프다고 외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나의 비명이 큰 고통이 되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간애로 적절한 위로와 공감을 할 뿐이다.
반대로 기쁜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다. 나보다 더 기뻐해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남들에게는 말을 아낀다. 그들은 내게 일어난 좋은 일에 질투와 시기를 얹어 사실을 왜곡시킨다. 나의 작은 성공, 행운을 노력이 아닌 어쩌다 우연히 얻어걸린 일로 치부한다. 기쁨의 크기를 줄이다 못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가슴이 찢어지고 환희에 넘치는 일을, 그 사람처럼 함께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 마음. 죽음이 가로놓였을 때, 소중한 사람에게 희미한 존재로 남기를 바라는 의지에 동감이 간다. 나 때문에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일상을 굳건하게 자기만의 생을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