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로 남을 수밖에

by 지홀
웹소설 ≪당신과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작가 서모린
제19화 서브 남주인공 프란시스의 말

“그 애가 내게 준 모든 게 ‘처음’이라는 것. 처음 만든 자수, 처음 뜬 레이스, 처음 그린 그림, 처음 들려준 피아노 연주, 첫사랑, 첫 키스, 첫…….”

“처음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모름지기 ‘처음’이란 의미가 깊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알겠더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게 그저 습작품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숙련된 뒤에 만든 것들은 아무것도 내게 주어지지 않았어. 그건 다른 사람, 조금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관심을 끌고 싶은 사람에게 주었더군. 그게 가장 슬펐어.”

처음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첫사랑이 그 대표적인 것일 테다.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하는 것이 첫사랑. 실제보단 많이 미화되었을 상대의 모습과 나의 기억. '처음'이라는 환상에 빠져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억으로 더 부여잡으려 하는 건 아닐까? 그마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물거리는 기억이 되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한다. 첫 입학, 첫 수업, 첫 만남, 첫 여행 등이 아스라이 먼 이야기가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처음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습작품이든 숙련된 것이든, 처음이든 아니든, 현재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제106화 남주인공 에드릭의 깨달음

"약자는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는 쪽이 아니라 후회를 남기는 쪽이라는 것을. 우월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몸을 사리며 약은 술수를 쓰는 한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갑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사랑에 있어 강자, 약자를 구분 짓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이 표현하지 않아 후회를 남기는 것보다는 약자로 남더라도,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부모님 앞에서 '갑' 행세를 할 때가 있다.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보도록 만든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후회할 시간은 부모님 보다 내가 더 많을 텐데 후회할 짓을 많이 한다. 아빠는 얼마 전부터 하지 않으시던 말씀을 하신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수고했어."라고 하신다. 손발이 찬 아빠를 위해 '보온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드리면 "고마워."라고 하신다. 듣지 않던 인사다. 속으로 여러 번 연습하셨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나도 더 따뜻한 반응을 해드리면 좋을 텐데,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이미 자식은 부모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못나게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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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