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운 말 한마디

by 지홀
웹소설 ≪여보, 나 파업할게요≫ 작가 고은채 제74화
여주인공 카시아가 상단주와 협상하며 한 말.

"사람 일은 모르는 걸세. 너그러운 판단 하나가 언제 그대에게 금덩이를 쥐여줄지 모르고, 경솔했던 말 한마디가 언제 그대의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지."

젊었을 적에 나보다 못하다고 여긴 상대를 자주 얕잡아 봤다. 거래처 사람이든 동료든.

내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이 하는 말과 생각은 얼토당토않았으므로 새겨듣지 않고 흘려보냈다. 일도 잘하지 못했으므로 놀고먹는 사람 취급을 했다. 세상에서 나만 제일 바쁘고 내 생각이 제일 괜찮은 줄 착각했다.


마흔이 넘어 그 어리석음이 깨진 일화가 있다. 당시 거래처의 실무자는 선한 표정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으나 사안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고 업무 역량이 떨어졌다. 게다가 의욕적이지도 않아서 내심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와 회의를 했다. 그나마 그의 팀장이 '척하면 척' 하고 알아듣는 사람이어서 회의가 겉돌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실무자가 말을 하면 내 머릿속은 어느새 회의 장소를 떠나 다른 곳을 떠다녔다. 그가 하는 말은 죄다 현실 감각 없게 들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중이었다. 거래처 팀장은 내가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차나 한 잔 마시자며 카페로 회의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앞장섰다. 나와 직원은 마지못해 그 팀장을 따라나섰다. 우리가 '을'의 입장이었기에 차 값을 내려고 직원에게 법인카드로 결제하라고 했다. 회의실에서 그냥 회의를 끝냈으면 될 일을 왜 카페로 와서 차값까지 결제하게 만드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실무자는 차까지 마시며 회의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팀장은 우리 직원을 극구 만류하며 결제를 하더니 "오늘 서대리 생일이라 내가 사는 거예요."라고 했다. 팀장은 자리에 앉으며 "우리 서대리 책상에 꽃바구니 있었는데 못 봤어요?"라며 그 실무자를 가리켜 "사랑받는 남편"이라고 했다.


그 팀장은 자기 직원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타 회사 직원인 우리 앞에서 그를 감싸고 한 사람으로서 존중했다. 그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이 사람도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남편, 아빠구나!' 그제야, 오만하고 어리석었던 내 마음 상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회사가 그를 채용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내 멋대로 사람을 재단했다는 걸 알았다. '사랑받는 남편'인 서대리의 얼굴을 다시 봤다.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쑥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그를 다시 보게 되자 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들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 이후로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선현들의 말은 참이다. 너그러운 말 한마디는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경솔함은 얕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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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