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녹음의 관 ≫ 작가 시야 제42화
남주인공 유스타프가 여주인공 란에게 한 말.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바위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할 테고 매번 조각나서 튕겨나가는 꼴이 우습다고도 생각하겠죠. 나중에는 그러든지 말든지 무감각해졌을 겁니다. 그러다가 언제 바위가 자신이 파였다는 걸 알아채는지 아십니까? 더는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찰랑하고 고이는 소리가 났을 때죠. 그리고 얼마나 깊게 파였는지는 더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고 고인 물이 사라져 버렸을 때. 제 안이 얼마만큼 텅 비게 되었는지를 보고 나서 깨닫게 되겠죠."
지금까지 읽은 웹소설 중에서 이 대사만큼 시적인 대사를 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아주 느리고 천천히 마음속에 스며들었음을,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웹소설 중에서도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로판) 장르를 읽는 이유는 '사랑' 이야기가 좋아서다. 둘 중에서는 로판을 더 선호한다. 마법이 펼쳐지고 환생하고 회귀하고 빙의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다. 운명적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긋난 생을 거듭하여 마침내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일 테다.
로맨스와 로판, 이 두 장르는 이야기 구조가 같고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남녀 주인공의 인생은 제각각이고 그에 따른 서사도 다르다. 특히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느끼는 장면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현실처럼 수백만 가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그 첫 만남과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읽을 때마다 설렌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다 상상할 수 있어도 흥미롭다.
예전 "사랑의 스튜디오"부터 최근의 "나는 솔로"까지, 각종 연애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 까닭은 그런 설레는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 아닐는지.
나는 사랑의 위대함을 믿는다. 현실에서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그 헌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적 같은 일이다. 반면,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는 경우도 있다. 사랑만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에스콰이어"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심신 미약 상태다." 동의한다.
연애했던 때를 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나 싶은 순간이 많다. 부끄럽고 창피한 순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겼지만, 아주 이성적 사고를 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들. 심신 미약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은 죄가 될 수 없다.
제144화 남주인공 유스타프의 속말
"관계가 객관적이 되려면 타자화가 되어야 하고, 타자화가 되는 관계라면 이미 관계가 아니다. 관계는 항상 주관적인 법"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것 같다. 친밀한 관계는 객관화하기 어렵다. 친구, 동료, 가족, 연인 모두 주관적 관계다. 제삼자가 보기엔 천하의 나쁜 사람일지라도 내겐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단점이 많은 친구를 손절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나를 이해하고 알아준 친구이므로. 친구의 단점을 들먹이며 욕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 나쁘고 옹호하게 된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사적 친밀감과 신뢰가 쌓인 동료는 남들이 험담을 하더라도 감싸게 된다. 동료가 그런 발언, 행동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준다. 가족과 연인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객관화가 어려운 관계다. 때로 이성적 사고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가 있지만,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언제나 감정이 끼어든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누군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남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