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9
한 달이 지난 후 올리는 늦은 가을 기록이다.
국내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영주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서울 출발 KTX, 영주에서 버스, 점심과 저녁 두 끼 식사 그리고 소수서원, 선비마을 입장료 포함. 영주 지역 디지털관광주민증을 발급받는 조건으로 음식값과 입장료가 할인된 패키지였다.
거의 10년 만에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방문 때도 분명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한 내용이다. 뭐라도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인다는 남의 말에 공감하며 그걸 실천하려고 해설사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편이다. 그 순간은 "아하!" 하며 놀라고 감탄하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며 좋아한다. 문제는 그 얘기가 뇌리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거다. 십여 년 전 부석사를 다녀왔고 그때 상황, 감정 등은 기억에 남아도 절에 얽힌 얘기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이번에도 오늘 들은 의상대사, 선묘 낭자 얘기가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다. 소수서원의 퇴계 이황선생이나 금성대군이 반정의혹을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한 끔찍한 얘기는 이제 아스라이 사라지려 한다.
그래도 완전히 잊기 전에 생각나는 걸 적어본다.
- 아미타불을 한자로 쓰면 무량수불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량수전이 되었다.
- 윤회는 반복되므로 고통이다. 극락은 윤회를 끊어 평안한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무량수전(아미타불)은 극락왕생한다는 말이라고. 무량수전을 올라가는 계단은 108 계단이다.
- 신라삼국통일시대 문무왕의 지시로 화엄종파 의상대사가 낙산사 이후 두 번째로 창건한 사찰.
-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시절 선묘 낭자(당나라 여인)가 10년간 뒷바라지를 함.
- 의상대사가 신라로 오며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왔는데 선묘 낭자는 용이 되어 바닷길을 따라옴
- 용이 된 선묘 낭자가 의상대사를 구함(어떤 상황에서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음)
- 용이 부석사에 우물 3개를 만듦 (부석사에 선묘 낭자 전각 존재)
- 일본에 불교가 전파될 때 이 얘기가 같이 전파되어 선묘사가 있다고 함. (교토에 위치)
- 의상대사가 막대기로 땅을 치자 커다란 바위가 생김 (부석사 - 돌이 공중에 떠있다는 뜻)
- 부처(비로자나불-부처님 중 제일 높은 부처)가 옆으로 앉아 있는데 그 이유는 서쪽이 극락이므로
극락세계를 관할한다는 의미라고 함.
부석사와 소수서원에서 열심히 해설사 얘기를 듣는데 다른 친구들은 아름답게 물든 나무 아래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잊어버릴 얘기를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며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이 더 유익하다"는 친구 말에 나의 고정관념이 또 깨졌다.
기억에 남지 않을 얘기를 열심히 듣느라 주변을 돌아보고 친구와 얘기 나누며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친구 말처럼 그냥 그 장소의 멋진 풍광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구나 싶다. 오늘을 역사, 설화가 얽힌 장소를 다녀온 게 아니라 친구들과 가을 한복판에 있었다고 기억하게 될 것이므로.
덧붙임. 영주여행에서 깨달은 또 한 가지.
부석사의 해설사님 : "여러분이 여기에 여행올 수 있던 건 누구 때문이죠?"
버스에 같이 탔던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해설사님 : "그건 모두 집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 놓고 여행 다닐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건강하신 부모님,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사람 등등 아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덕분이에요"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집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을 단풍 구경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 건강하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