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

2025. 12. 31

by 지홀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했던 김우빈 배우의 말을 듣고, 거의 10년 전 쓰다가 팽개쳐 둔 "감사 일기장"이 떠올랐다. 그 일기장을 다시 꺼내 매일 고마운 일을 적기 시작했다.


내게 감사한 일을 적는 행위는 마음을 선하게 유지하려는 방편이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이 일기장을 꺼내 기운을 얻으려는 것이고, 이런 착한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하므로 하느님이 보우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다.


힘들 때 힘든 사람을 더 잘 알아보게 된다던가.

IMF를 맞닥뜨렸을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기부하고 싶었다. 끼니를 거르는 아동을 후원했는데 아이의 사진과 나이, 가정환경 등을 보내줬다. 처음엔 사내아이였다가 나중엔 여자아이로 바뀌었다. 몇 년 간 후원만 하다가 어느 해에는 후원자와 아동이 만나는 행사에 참여했다. 한강 유람선에서 행사를 했기에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어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못하고 뻘쭘하게 있다 왔다. 그 후 특정 아이와 결연을 맺는 일이 부담스러워 후원 형식을 바꿨다. 한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만나는 일은 현격히 달랐고, 실제 마주한 아이와 관계를 맺는 일은 또 다른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 같아 솔직히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동 후원, 환경보호 단체 후원, 단발성 후원을 하는 마음 저 밑바닥에는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선한 일을 하므로 그 일이 복이 되어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마음이 지옥 같을 때였다. 자존감이 바닥일 때, 그걸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마음이 좀 괜찮아지자 매일 쓰던 걸 드문드문 쓰다가 어느 때부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처럼.


김우빈 배우의 말에 퍼뜩 떠올라 다시 든 감사 일기장은, 그때처럼 마음이 힘들지 않지만 꾸준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 적는다. 화장실 들고 날 때 마음이 같도록. 초심을 잃지 않도록.


오늘 우연히 본 유튜브에서 나쁜 운을 좋게 바꾸고 싶으면 무조건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했다. 예부터 베푼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말을 믿는다. 결국 남을 돕는 일도, 선하게 살려는 노력도 모두 나를 위한 거다. 나는 마더테레사와 같은 고귀한 정신은 없다. 그저 좋은 일 하고 나도 복 받고 싶은 마음뿐.


오늘 포춘쿠키 글에 이런 말이 나왔다.

"무심한 한 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 좋을 예정"


맞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2025년 마지막 날에 이런저런 핑계를 속으로 대며 지각을 합리화하려고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당해지자. 반성할 건 반성하고 고치자. 늦을 수밖에 없던 일은 나만 알면 되는 일. 입 밖으로 내어 구차해지지 말자.

요 핑계 조 핑계 요리조리 궁리하던 조잡한 마음 때문에 우울했는데, 톡을 보고 기분 좋아졌다. 1년 내내 연락 없던 사람, 몇 년 간 연락 없던 사람들의 '생일 축하' 문자. 새해인사와 함께 온 가볍고 부담 없는 인사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오늘의 감사 일기장은 두 페이지를 넘어 세 페이지에 달한다. 고마운 일 투성이다.

한 해 마지막 날, 음력 생일이라 우연히 걸린 12월 31일 생일.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


12월30일 아침의 태양(08:41)

위 사진은 12월 30일 오전에 찍은 태양. 육안으로도 붉은 태양이 일출인 듯, 일몰인 듯 혼동될 정도로 붉었다.



찍고 보니 나무에 걸린 태양이 근하신년 카드 같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새해인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대문 사진으로 걸었다.

12월30일 아침의 태양. 오른쪽은 근하신년 카드 같다. (08:41)
오늘 저녁 종로에서 본 달 (12월31일 17:44)


"오늘의 하늘" 매거진에 올라온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자주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글은 계속 쓰고 있어요.

좀 더 자주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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