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지 않은 눈이 펑펑 내렸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기세로 내리던 눈은,
언제 왔었나 싶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흔적없음.
머리속에 마음속에는 남아있다,
눈이 왔었음을.
보이지 않아 잊을 수 있다고,
잊었다고,
괜찮아졌다고 했지만
이렇게 연상되는 것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알게된다.
그가 있었음을.
첫 눈이 펄펄 내리던 날,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뻤던 날.
보통 여자들의 로망을 이루던 날.
언제 어디서부터 자라난 로망인지 모르나,
첫 눈 오는 날 괜스리 착잡했던 숱한 날을
말끔히 씻어준 그와의 데이트.
내 온 세상을 그의 사랑으로 뒤덮을 것 같았던.
기억도 나지 않는일로 다투어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흰눈이 펑펑 쏟아지면 자연스레 떠오른다.
눈이 왔었는지도 모르게
다 녹아 없어져 흔적 없기를.
머리속에도
마음속에도
아니, 아니.
얼어붙어 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