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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미 Dec 19. 2022

다만 현실을 이뤄가기 위해

내가 교사라는 진로를 선택하게 된 사정 

사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내가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하며 살아왔다. 대학생 시절, 하루는 지하철 역에서 학교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학생 무슨 과냐며 물어와서 국문과라고 대답을 하니 그럼 교사가 될 거냐고 물었다. 그때는 국영수 과목을 전공하는 여학생에게 진로로 바로 교사를 연상하는 것이 마치 너는 여자니 꿈을 작게 가지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교사는 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고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런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 1년 전에 교육대학원에 왔다.


내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는 거대하지 않다.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순수한 꿈을 가진 동기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일단 어머니가 교사로 지내다가 명예퇴직을 한 분이라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친근감이 컸다. 꿈이 없어지고 미래가 좁아 보이던 시절에 갑자기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교사는 가까운 진로처럼 여겨졌다. 교육대학원 입시를 선택할 당시 친한 동생도 마침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교사로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도 내게 영향을 주었다. 그녀가 시작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대학원 입시를 선택할 시절 나는 의미와 미래가 없어보이는 직장 생활에 지쳐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 나는 성공한 현역 입시에 취해있었고 자신만만했다. 일단 자기소개서에 진정성 있는 1,200자가 술술 적힐 만큼 꿈이 많았다. PD, 방송작가 등 주로 대중문화에 관련한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러한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전에 여러가지 학생회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처음 겪어보는 대학 생활과 속해있던 단체 내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내가 너무 빨리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확히 이유는 모른다. 번아웃이었을까? 혹은 그저 현실 도피였을까? 어쨌든 나는 남은 대학생활을 미래 진로에 대한 탐구와 준비 없이 어영부영 흥미만을 좇아가며 보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남들보다 늦은 졸업과 소위 말하는 취준에 필요한 ‘스펙’이 없는 나 자신이었다. 


그 결과 콘텐츠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대충 취직한 교육계 스타트업은 체계가 없었고 비전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일을 했다. 텍스트와 관련된 일을 전부 도맡아 하긴 했지만 내 자신의 ‘전문성’, 즉 ‘대체불가능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두 발이 붕 뜬 채 국가에서 그때그때 외주를 맡아서 쳐내는 스타트업에서 지내서 그런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느끼고 있는 감각이 그리웠다. 


국문학이라는 전공을 아주 천직이라고 여긴 적은 없지만 어쨌든 오랜 시간을 보낸 전공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익숙한 감각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잘 알고 내가 잘할 수 있고,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곳으로. 국문학만을 연구해서 먹고 살 길은 요원하니 이왕이면 생업의 형태를 갖춘 교사가 좋을 것 같았다. 평생 나에게 익숙한 전공을 공부하며 살 수 있고, 게다가 (거의) 평생을 보장해준다니. 이보다 적절한 전직(轉職)은 없어 보였다. 트래픽, 매출과 같은, 내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종류의 것에 질린 상태라 국문학이라는 순수 학문 그리고 학생들이라는 매출과 거리가 먼 세계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문학사 공부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던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입시를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아주 오랜 기간 잊고 살았던 어느 정도의 자기효능감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나의 계기는 이토록 얄팍하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를 놓고 보면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순수하게 선생님 외길을 추구하며 학생에 대한 깊은 사랑과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개척한 분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남들에게 말할 때도 열없고 멋쩍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기실 나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하고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그 순간보다 교육대학원에 와서 여러 수업을 들으며 1년을 보낸 지금에서야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가진 깊이를 체감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원에서 독서, 작문, 교과교육론 등 여러 수업을 들으며 나에게 가장 크게 몰려온 깨달음은 국어교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꼭 ‘요즘 애들’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수 있겠으나, 각종 수업에서 주워들은 말은 나를 조금 공포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요즘 친구들은 책을 안 읽어요. 긴 글을 읽을 줄을 몰라요.’, ‘요즘 아이들은 글을 안 써요. SNS에서도 남의 글을 ’눈팅‘만 하고 자기 스스로 게시글을 쓰지는 않아요’, ‘요즘 애들은 아주 흔한 한자어도 잘 쓰지 않아 몰라요’,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말하자면 끝없다. 


대체 국어교사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해줘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오싹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남들의 국어 능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6년을 넘게 항상 텍스트와 벗 삼아 지내는 국문학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쌓은 것이 이런 곳에서 발휘되나. 인터넷 세상에서 Z세대가 ‘심심한 사과’, ‘십분 발휘’와 같은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뉴스를 보면 열이 뻗치는 걸 넘어 대체 왜 세대 사이에 한자어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가 생기는지 깊은 흥미가 생겼고 SNS에서 ‘나는 대체 왜 난쏘공과 같은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정보 텍스트만 잘 읽으면 족하지 않나?’라는 주장을 볼 때면 뒷목을 잡으며 문학의 필요성을 혼자 역설했다. 


어쩌면 ‘글’, 그리고 ‘단어’와 동떨어진 아이들의 삶이 나로서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아 더더욱 심각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국어교육과에 들어온 전공생들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나는 국어책을 받으면 학기 시작 전 방학에 교과서에 들어있는 텍스트를 전부 읽는 사람이었고 지적허영이 있어 늘 문학적 텍스트에 흥미를 가졌으며, 글쓰기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오만하고 시혜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 ‘텍스트 문화에 익숙한’ 내가 보는 것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몰라서 안하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텍스트 문화로 이루어진 그 풍경을 좋아하든 말든, 그건 그 다음의 문제지만….


이렇듯 나는 교육대학원에 들어와 지금 이 세대에게 정말 좋은 국어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고 국어교사가 해야만 하는 일에 나 또한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후천적인 꿈, 현실에 가까운 꿈이지만 나는 이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결국 국어교사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하루하루 만나는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동기가 간절하지 않다고 탄식할 시간은 없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알고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다만 더 나은 현실을 이뤄가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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