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너무 솔깃하면 내 것이 아닌 겁니다.
면접 날짜를 정한 후
이미 Xing이라는 인재포털을 통해
디자인 팀장님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팀장은 브라질 사람으로
스웨덴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인재.
독일 사는 같은 외국인 입장으로
대화가 통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하는 생각에
요즘 이케아 디자인 방향과
내가 어떻게 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둔 상태였다.
대망의 면접날
정문이 아닌
직원들만이 출입하는 공간으로 오라고 하신다.
이 지점에서 물건을 사느라고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었는데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꽤나 신선했다.
출입구 창구 안내원에게
이름과 정보를 적어서 제출하고
방문자카드까지 받고
긴장 반 기대 반
디자인 팀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한 분의 여자 직원과 같이 밖으로 나와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런데 약간의 스몰토크가 복도에서 오간 후
결국 회사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다.
책상 앞에서 지루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산책을 하면서 자유롭게 얘기를 하자면서...
으잉? 밖이 아직 추운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가기 싫어요라고 피력할 이유도 딱히 없고
밥 먹고 졸려서 그랬으면 좋겠다 하길래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 데로 나를 둬보기로 했다.
이케아 매장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산책 겸 면접이 시작됐다.
팀장의 소개는 다른 직원이,
다른 직원의 소개는 팀장이 해주면서
화기애애하게 농담도 곁들인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결국 VMD로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자
나는 또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은 쇼룸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관리하는 거야.
쇼룸을 제외한 부분?
즉, 물건 매대, 창고, 조명, 가격판설치, 등등이 내가 해야 할 일이란다.
각 시즌마다 새로운 구조물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
즉, 체력 또한 엄청 요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쇼룸작업은 전문 디자인팀이 따로 맡아서 한다고 한다.
나는 쇼룸을 꾸미는 것 또한 미래에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기대가 되었는데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포지션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부분에 조금 희망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Duales Studium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는데
홈페이지에는 3년 과정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대학졸업시험까지 완벽하게 완수하려면
현실적으로는 5년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같이 나온 여자 직원이 작년에 Duales Studium을 마치고 정식채용된 거라 설명에 설득력이 있었다.
이거 뭔가 쉽지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건
그 두 직원의 체념한 듯한 일에 대한 태도였다.
회사에 개선해야 할 부분을 계속 이야기하는데 전혀 개선이 되지 않는다고 은근한 푸념을 했다.
나를 편하게 여기는 건 좋은데
면접자를 앞에 두고 회사욕을 하는 건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한데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시간적 배려를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마감시간 안에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이거 데자뷔인가? 나도 전 회사에서 충분히 경험한 거 같은데?
이런 이상한 면접을 처음 경험해 봐서
기분이 싱숭생숭하긴 했지만
마침 며칠 전에 이사를 해서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것들이 좀 있었고
온 김에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가자 해서
이케아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면접 덕분인지 내 눈에 쇼룸보다는 그 외의 조명, 매대와 매장 구조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한참 돌아다니는 동안
방금 면접에서 만났던 그 여자 직원을 우연히 마주쳐 눈인사도 주고받았다.
다른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걸 보니
역시 그냥 직원이 아니라 매니저급으로 채용되었나 보다.
면접을 마치고 든 느낌은 잘 모르겠어였다.
이것이야 말로 그동안 해왔던 일의 연장선일 거 같았다.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과 다시 빨리 돈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복잡한 감정이 들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래도 만약에 일을 시켜주면 해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지 않을 거라고 나를 위안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Hej,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너와 함께 일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
Duales Studium에 지원한 거 그대로 진행할래? 아님 취소할래?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이미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 별로한테 까인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거 말고는 아직 당장 대안이 없기에 지원한 거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메일에 답을 했다.
결국 근본적인 질문으로 또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