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보다 조금 작은 벽돌 덩어리가 좁은 틈 사이에 완강하게 박혀 있다.
처음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요지부동이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 벽돌과 한 몸이었을 주변의 부스러기들을 먼저 긁어낸다.
무작정 검지에 힘을 준다고 열리는 길은 없다.
이리저리 주변을 건드리다 보면 반드시 유독 크게 흔들리는 지점이 발견된다.
그 녀석을 달래듯 살살 굴리다 보면, 꽉 맞물려 있던 세계가 비로소 헐거워지는 결정적인 찰나가 찾아온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힘을 주면, 벽돌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제 자리를 내어준다.
물론 모든 돌이 순순히 빠져나오는 건 아니다.
어떤 녀석은 이상하게 맞물려 벽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럴 땐 욕심을 버리고 다른 곳을 공략한다.
주변이 비워지면 목적했던 덩어리가 빠져나갈 공간이 자연스레 생기기 마련이니까.
결국 빠져나오는 것은 벽이라는 거대한 질서에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 혹은 그 역할에서 놓여나길 기다리던 존재들이다.
긁어내고 돌리며 마침내 쑥 하고 뽑아냈을 때, 벽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은 반대편 세계를 보여줄 만큼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그 구멍을 기점으로 ‘타다다닥’ 소리를 내며 거미줄처럼 번져나가는 미세한 잔금들은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는 이를 낡은 벽의 퇴락이라 부르겠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의 장난이 빚어낸 성취이자 정적인 벽에 새겨진 역동적인 지도다.
이 구멍 하나로 벽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겠지.
나 역시 이 견고한 질서를 단번에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결과를 알 수 없었던 심심했던 아이의 장난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고착된 풍경 속에 작은 변칙을 만드는 즐거움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 작은 구멍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서사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습기가 스며들면 짙은 초록빛 이끼가 그 자리를 점령할 테고, 바람에 실려 온 한 줌의 흙이 쌓이면 어느 봄날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벽 위로 기적처럼 피어날지도 모른다.
누군가 지나가다 주워온 이질적인 돌멩이가 그 빈칸을 채울 수도 있고, 개미들에게는 이 거대한 장벽을 가로지르는 은밀한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이 벽돌을 건드렸을 때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나의 작은 힘으로 이 견고한 세계가 무너지는 장엄한 풍경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벽돌을 뽑아낸 손 끝에 남은 감촉은 파괴의 쾌감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하게 굳어버린 삶의 형태도 결국 조금씩 건드리다 보면 변화의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구멍이 더 큰 구멍을 만들지도 혹은 그저 구멍으로 보이는 벽너머의 풍경뿐일지라도 그 구멍이 가져다주는 자유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보낸 지루한 시간 혹은 하굣길의 우연한 호기심이 만든 이 작은 균열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여흥이 아니다.
그것은 굳게 닫힌 벽에 숨구멍을 내고, 자연과 시간이 그 안에서 마음껏 춤추게 만드는 고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벽은 여전히 서 있지만, 이전의 벽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