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안톤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안톤슈낙의 글이 생각나는 밤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삭아버린 나무틀 위에 새겨진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한때는 누군가의 세상을 온통 뒤흔들었을 그 이름 ‘아이세’는 이제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얼룩이 되었다.
비를 맞고 시간을 맞으며 사랑의 고백은 풍화되고, 그 고백을 새긴 손길도, 그 고백을 받은 눈동자도 모두 희미한 잔상만을 남겼지만, 누군가의 기억에는 뚜렷하게 각인된 깊은 자국의 글씨로 남아있다.
우리의 삶도 결국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나누었던 뜨거운 약속들도 흐르는 시간이라는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 결국엔 희미한 흔적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역설적인 건, 구체적인 기억과 이름이 흐릿해질수록 그 시절 우리가 느꼈던 ‘감정의 무게’만은 더 날카롭고 강렬하게 남아서 우리를 고독하게 만든다.
내 곁의 너는 사라졌는데 내가 널 사랑했던 감각만은 유령처럼 남아서 가슴 한구석을 시리게 한다.
슈낙이 묘사한 ‘비 내리는 거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떠는 개’나 ‘정원 한구석에 홀로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은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나 자신의 투영은 아닐까.
흙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고궁의 벽처럼 우리 영혼의 일부도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그 빈자리를 메우는 건 결국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침묵뿐이겠지.
사랑은 희미해지기에 아름답고, 잊히기에 슬프다.
‘아이세’라는 이름을 썼던 그 이름 모를 이도 아마 알고 있었겠지.
자신의 고백이 언젠가는 나무와 함께 썩어갈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문장을 남긴 건, 찰나의 진심만은 시간을 이겨내길 바랐던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득 며칠 전 내렸던 봄비가 그리워지는 밤.
나는 삭아가는 나무 위에서 희미해진 문장들을 손으로 가만히 짚어보는 상상을 한다.
비록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잊힌다 해도, 한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그 선명한 고독만큼은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가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