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차에 부딪혔다는 기억은 있다.
차에 치였다고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차에 부딪혀서 몸이 공중으로 붕 떠서, 차도를 건너려던 내가 인도 위로 떨어졌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의 나에게 부산의 가파른 비탈길은 거대한 게임판이었고, 남포동 어귀의 학교까지 달려가는 길은 매일 갱신해야 할 '최단 기록'의 미션이었다.
굽이치는 골목 사이사이는 혈관처럼 얽혀 있었고, 나는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가장 빠른 적혈구였다. 계단과 계단 사이의 공백을 점프하고 남의 집 담을 넘으면서 희열을 느꼈고, 마치 홍콩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나는 스스로 취권의 성룡이 된 것처럼 골목을 휘저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횡단보도 없는 2차선 도로, 차와 차 사이의 좁은 틈새는 나에게 멈춤의 신호가 아닌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로 위로 몸을 던진 순간, 눈앞의 세계가 '쿵'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뒤집혔다.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것은 추락이라기보다 차라리 '비행'에 가까웠다.
내가 뛰어든 방향의 역풍을 타고 나는 다시 인도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급정거의 굉음이 들렸고, 나의 눈은 잠시 암전 되었다.
곧이어 괜찮냐는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고, 나는 놀란 마음과 학교에 지각할 것 같은 조바심에 벌떡 일어나 다시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아저씨가 나에게 몇 마디를 했던 것 같지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 내 손에 명함도 쥐어주셨던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곧이어 선생님께 호출을 받았고, 집에 계셨던 엄마가 내가 차에 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크게 걱정을 하셨다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다. 그리고 분명하진 않지만 난 괜찮다고 엄마랑 통화했던 것 같다.
몸에 상처는 없었다. 차에 부딪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놀란 근육을 이끌고 무리해서 그런 것인지 발목이 살짝 아팠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조금은 특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스무 살이 넘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군대 가기 전 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세상의 무게는 훨씬 커졌다.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했고 자전거를 타고 구청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일상의 압력이었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밥을 먹고 구청으로 돌아가던 길, 좁은 주택가 골목에서 나는 다시 한번 차에 치였다.
이번에는 분명히 치였다.
어린 시절의 비행과는 달랐다.
이번의 충돌은 지독하게 구체적이었다.
몸은 다시 공중에 떴지만, 체공 시간은 어린 시절 성룡의 부유와는 다르게 잔인할 만큼 짧았다. 회색빛 콘크리트 바닥은 차가웠고, 내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명확했다.
길 위에 대자로 뻗어버린 나를 향해 동네상인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아픔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헐거워진 내 삶의 한 단면을 들킨 것 같은 수치심.
몸에 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자전거를 얼른 주워 세웠다.
그것은 내 이동 수단이자, 가난한 청년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었기에.
차주가 건네준 명함을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고, 나는 비틀거리는 자전거에 다시 올랐다.
혹시 구청에 늦을까 하는 조바심에 휘청거리는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속이 상했다.
나의 몸보다 한 대뿐인 자전거가 고장 났을까 봐.
차에 부딪힌 대미지를 자전거가 온전히 받았는지 자전거는 삐걱거렸고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내 심장 소리처럼 들렸다.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던 시절. 병원에 가보라는 주변의 말에도 엄마 없는 나는 혹시 차주가 마음이 불편할까 받았던 명함으로 괜찮다는 문자까지 먼저 보냈었다.
바보였다. 가난한 주제에 바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조금은 바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마 그전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더 이상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세상의 속도에 치여도 그저 묵묵히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어리숙한 행인임을 깨달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