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시간과 경험이 충돌하며 빚어낸 결합체이자, 냉혹한 현실에서 달콤한 상상을 덜어내고 남은 찌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메마른 기억 위에 다시 상상을 덧입히는 행위는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습제' 역할을 한다.
시간이라는 습기에 부식되기 쉬운 사실의 단면을 상상이라는 자력으로 코팅할 때, 우리의 과거는 비로소 현재를 견디는 힘이 되며, 오히려 과거의 기억을 쉽게 되살려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견뎌낸 빨간 머리 앤의 힘은 바로 여기서 기인했다.
그녀는 실제의 추함은 걷어내고 미덕만을 골라 기억의 저장고에 담았다.
상상 속에서 에이본리 마을의 들판은 실제보다 더 푸르렀고, 물의 색은 더 투명했으며, 꽃들은 영롱한 생명력을 얻어 영속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이는 동물의 본능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바꾸고자 하는 인간만의 고귀한 노력이다.
예술은 바로 그 기억의 조각이자 상상의 산물이다.
보편적인 기억이 글에 단단한 뼈대를 부여한다면, 창의적인 상상은 그 골조에 생동하는 피를 돌게 한다. 표현되어지는 것은 살아 있고, 말해지는 것은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상상이 가미된 묘사가 사실성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을 움직이는 일이며, 그 아름다움은 결코 한 가지 모습일 수 없다.
구체적인 언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잊힐지라도, 그 표현이 남긴 감각과 감정의 잔상은 별처럼 남아 공허한 삶의 밤하늘을 비춘다.
우리의 뇌는 영리하면서도 때로는 무력하다.
인간의 뇌는 기억과 상상을 완벽히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인지, 혹은 책 속에서 강렬하게 마주한 장면인지의 경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모호함 때문에 우리는 더 아름다운 것을 읽고, 듣고, 느껴야만 한다.
뇌가 상상을 기억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접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곧 나의 실존적인 기억이 되어 삶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너를 껴안으며 느꼈던 온기, 그리고 예술 속에서 만난 수많은 타자의 삶이 내 기억 속에서 한데 버무려져 생동한다.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 '실제의 기억이자 창조된 기억'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한다.
어쩌면 신은 인간에게 연민을 느껴 완벽한 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슬픔을 사진 찍듯 기억하지 않게 하시고, 그 빈자리를 아름다운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기억의 조각들을 상상의 빛으로 닦아내며, 어제보다 조금 더 푸른 들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