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아버지

by 우물

대문 앞 갈라진 틈 사이로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흔히 '치즈냥'이라 부르는, 연한 갈색 털에 희미한 흰 줄무늬를 두른 작은 생명체.
녀석은 무엇을 그토록 애타게 찾는지 사람이 다가가도 피할 줄을 몰랐다.
그저 크고 선명한 눈망울로 목청껏 울 뿐이었다.

어머니를 여읜 그해 여름, 어미 잃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속 깊은 곳의 슬픔을 건드렸다. 나는 동질감이 서려있는 연민으로 그 작은 몸을 조심스레 감싸 안아 집안으로 들였다.

고양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서툰 시작이었다.
하지만 내 방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숨소리는 적막하던 집안에 묘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학업까지 미뤄두었던 누나도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 마당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결핍된 환상을 채우려는 듯, 누나는 그 무해한 생명체를 보며 오랜만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당시는 고양이 전용 사료나 우유를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마산 외갓집의 개들이 사람이 먹다 남긴 밥을 먹듯, 고양이의 식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아주 어린 새끼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고등어구이의 부드러운 살점을 발라주거나 밥을 물에 불려 내어 주었다. 혹여 날카로운 가시가 목에 걸릴까 정성껏 뼈를 골라내던 그 시간은, 어쩌면 우리 남매가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던 치유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신동 집의 생활에 익숙해진 고양이는 어느덧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아버지가 낮잠이라도 주무실 때면 그 몸 위로 기어올라가거나 머리맡에서 야옹거리며 존재를 알렸다. 아버지는 산복도로에 살던 시절에도 동네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시던 다정한 분이었기에, 이 작은 고양이도 곧 예뻐해 주실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양이를 귀찮아하셨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으셨지만,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 너머로 녀석을 밀어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양이와 함께한 지 3주쯤 지났을까.
평소 왕래가 별로 없으셨던 고모가 검은 봉지와 소주병을 들고 찾아오셨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짧은 인사만 남긴 채 집을 나섰다.
엄마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오빠를 위로하러 오셨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늘 나를 반기던 그 높고 정겨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누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아버지가 고양이에게 소주를 먹여 취하게 만든 뒤, 봉지에 담아 고모에게 보내버렸다고.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지인에게 보내주겠다는 고모의 말을 빌려, 아버지는 그렇게 고양이를 치워버린 것이었다.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그 공포스러운 순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작은 생명이 겪었을 고통과 배신감이 내 것인 양 아파서, 나는 거칠게 방문을 열고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몰아세우고 따져 물으려던 찰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뒤돌아 앉아 있는 아버지의 등이었다.

어린 시절, 세상에서 가장 넓고 단단해 보였던 그 등은 온데간데없었다.
삶의 무게와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짐에 짓눌려, 팔자로 굽어 내려앉은 그 등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더 깊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계셨다.
불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고, 아내를 보내고, 형제마저 잃었다. 장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장례의 상주가 되어 죽음의 뒷수습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사람.
속이 타 들어가는 슬픔을 소주 한 잔으로 달래며 겨우 버티고 서 있는 그에게, 어린 고양이의 돌봄마저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가혹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고양이를 잃은 나의 상실감을 알아달라고 투정 부리기엔, 아버지의 슬픔이 너무도 거대했다.
나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분노가 가라앉은 자리에 이해라는 서글픈 감정이 차올랐다.
그 여름밤,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삶의 무게를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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