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꼭 만우절만 되면 이성에게 고백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만우절은 단순히 속고 속이는 장난의 날을 넘어서 맨얼굴로 내놓지 못한 진심들을 '거짓말'로 포장하는 것이 허락된 날이었다.
1년 중 단 하루, 아이들은 만우절이 빌려주는 용기의 옷을 걸치고, 마음속 깊이 묻어둔 고백을 농담처럼 툭 던지곤 했다.
"나 너 좋아해."
이 한 문장 뒤에는 상대의 본심을 확인하려는 치밀하지만, 유리알처럼 투명해서 금세 들키고 마는 아이들의 계산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여자애들은 그 어리숙한 계산보다 늘 한 수 위였다.
만우절의 문자를 받은 여자애들 중 진짜 친한 여자애들은
"지랄하네"라는 짧고 명쾌한 일갈로 고백의 무게를 덜어내며, 행여 생길지 모를 어색함의 틈을 단단히 메웠다.
반면, 그보다 조금 더 진지했던 아이들은 만우절이라는 시의적절한 핑계를 빌미 삼아 철저히 선을 그었다.
"네 마음은 고맙지만, 넌 친구 이상은 아냐." 구구절절 이어지는 장문의 답장 속에는 오늘이 만우절임을 알면서도, 이번 기회에 아예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녀들에게 만우절은 상대의 진심을 거부할 권리가 가장 합법적으로 부여되는 날이었으리라.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순간은 예상치 못한 긍정의 답을 받았을 때 찾아왔다.
"나도 너 좋아해."
그 짧은 문장에 세상을 얻은 듯 환호하며 친구들에게 답장을 자랑하던 친구는, 결국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확인을 시도한다.
"진짜? 만우절 아니고?"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응당 예정되어 있던 차가운 반전이다.
"응, 만우절."
한순간에 천국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친구의 손에는, 농담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진 채 벌거벗겨진 자신의 속마음과 친구들의 비웃음 가득한 조롱만이 초라하게 남겨질 뿐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친구 S의 결말은 조금 달랐다. 그는 평소 별 감흥도 없던 아이에게
"오랫동안 좋아했어"라는 장난 섞인 문자를 보냈다가, 덜컥 "나도 좋아해"라는 대답을 받아버렸다.
그것이 진심에 대한 책임감이었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비겁함이었는지는 알 길 없으나, 그는 차마 "장난이었어"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S에게는 거짓말처럼 첫 여자친구가 생겼고, 장난으로 시작된 그날은 그들의 '1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만우절은 청춘의 감정들이 머무는 일시적인 안전지대였다. 비록 나이가 들면서 그런 진심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진심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진심을 전하기 위해 거짓을 빌려 쓰던 날의 용기가 부럽다. 우리는 '거짓말'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비로소 가장 솔직한 자신을 외칠 수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