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한 모금

생의 한 모금

by 우물

하얀 김이 성에 낀 창가에 피어난 얼음꽃을 지울 때
뚝배기 속엔 마르지 않는 강 하나 흐른다
허기를 달래는 끼니라기보다
마른 감정 한 다발을 꺾어서 태워 만든
식어가는 영혼을 덮히는 뜨거운 숨결이다.

어린 날, 새벽의 어스름을 감싸 안고
부엌에서 안방까지 고요히 흐르던 참기름의 고소한 향.
어머니가 가두어 둔 검은 미역 줄기 사이로
심해의 고요와 평화가 함께 끓고 있었다.
내 뼈와 살을 세운 건 화려한 음식들이 아니라
목을 타고 넘어가던 담백한 위로, 그 한 모금이었다

칼바람이 아직 여물지 않은 볼살을 찢어발기던 겨울의 끝자락
갓 스무 살의 노가다 판에서
먼지 낀 손마디에 밴 고된 노동의 짠맛을
벌건 국물 속에 조용히 풀어놓는다
잠이 들면 다시는 일어나기 싫었지만
아침 알람 소리에 다시 일어서야 했던 이유가
뚝배기 바닥, 뜨거운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

삶을 졸여 만든 뜨거운 한 모금
한 입 들이켜면 굳어있던 어깨 위로
살얼음 같던 하루와 함께 뭉쳐있던 서글픔이 녹아내린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는 차가운 밤에도
다시 내일로 밀어 올리는 건
가슴 가장 깊은 곳을 데워주는
따끈한 국물, 그 지독하고도 다정한 한 모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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