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Apr 23. 2018

"바람이 인다!. . . 살려고 애써야 한다!"

남불의 베니스, 세트


프랑스의 몽펠리에와 스페인 국경 사이의 지중해안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도시 세트는 흔히 지중해의 베니스라 불린다.
좁은 운하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운하 양쪽으로는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집들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도시는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였던 폴 발레리와 민중가수 조르쥬 브라상스, 아비뇽 연극축제를 만든 장 빌라르, 여성 영화감독 아네스 바르다,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는 세계적인 화가 로베르 콩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해발 185미터의 생클레르 산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



원래는 섬이었다가 오랜 세월 모래가 밀려내려오면서 육지와 연결된 이 도시에는 해발 185미터의 생클레르 산이 우뚝 서 있어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 오르다보면 지중해가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해변묘지가 있고, 거기에 <해변묘지>라는 시를 쓴 폴 발레리가 영원히 잠들어 있다.



뒤로 보이는 것은 프랑스 굴의 40퍼센트를 생산하는 부지그. 왼쪽 위에 네모진 것이 굴을 매다는 판이다.


   바람이 인다!. . .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대기가 내 책을 열었다 다시 덮는다
파도의 물보라가 바위틈에서 뿜어나온다!
날아가라,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부숴라, 네 희열하는 물로
돛배들이 모이를 쪼고 있던 이 고요한 지붕을!



폴 발레리
해변묘지



맨 왼쪽이 폴 발레리의 무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으나 조르쥬 브라상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통기타 가수다. 가사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그의 노래는 지금도 다른 가수들에 의해 즐겨 불린다. 얼마 전 이 산을 차로 오를 때 나는 베지에에 사는 장 상세스씨가 브라상스의 <엘렌의 나막신>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들었다. 좀 길지만 가사를 한번 음미해보자.



엘렌의 나막신은
아주 더러웠지,
세 우두머리들은
보기 흉하다 했지.
가엾은 엘렌은 형벌을
받고 있는 영혼이었네.
더 이상 먼데서 우물을 찾지 마라.
목 마른 자여!
엘렌의 눈물로
너의 물통을 채워라.

난 그것을
벗기려 애썼네.
우두머리가 아닌 내가
엘렌의 나막신을.
내가 수고한 대가는
나쁘지 않았지...
가련한 엘렌의 나막신 안에서
보기 흉한 나막신 안에서
난 여왕의 발을 보았네.
난 그걸 보살폈다네.

그녀의 양털 속치마는
완전히 벌레가 먹었네
세 우두머리들은
보기 흉하다 했지.
가엾은 엘렌은 형벌을
받고 있는 영혼이었네.
더 이상 먼데서 우물을 찾지 마라.
목 마른 자여!
엘렌의 눈물로
너의 물통을 채워라.


#https://www.youtube.com/watch?v=L17rrZ-khMA




조르주 브라상스


 

조르주 브라상스의 무덤


이 산에 올라서서 보면 남쪽으로는 쪽빛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서쪽을 보면 무려 19킬로미터에 달하는 모래사장이 있어서 여름에는 발디딜 틈이 없다. 그리고 그 너머는 프랑스에서 가장 크다는 누드 해안이다.

자, 북쪽을 보면 프랑스 전체 굴 생산량의 30퍼센트를 생산하는 넓은 또(Thau) 호수가 보인다. 무슨 책상이 죽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것은 굴을 매다는 기둥 같은 역할을 하는 판들이다. 이 호수 건너편에 굴 마을 부지그가 자리잡고 있으며, 여기에 가면 싱싱한 굴을 백포도주를 곁들여 싼 값에 먹을 수가 있다. 그리고 호수 오른편으로 보이는 주택단지는 프랑스 최고의 휴양촌이다.


엑소더스 호


1947년 7월 17일, 세트 항구에서는 4400명의 유대인들이 새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국가로
향하기 위해 배에 올라탔다. 그 배의 이름은 <엑소더스(Exodus)>였다!


1947년 유대인들이 세트에서 <액소더스>호를 타고 처음 만들어진 이스라엘국으로 떠났다.


로베르 콩바

매년 여름이면 세트의 운하에서는 수상창시합joute nautique이 벌어진다. 배를 타고 긴 장대로 상대를 쓰로트리는 시합인데, 세트 항구가 생긴 1666년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다. 세트에는 joute 협회가 일곱 개나 있고, 심지어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학교까지 있다.


수상창시합


세트에 가면 이 도시의 특산물인 티엘을 한번 먹어보자.
이것은 속에 오징어나 낙지, 토마토, 고추를 넣고 만두처럼
오무린 다음 익힌 요리다. 이 음식은 차갑게 먹어도 되고
덥혀서 먹어도 좋다. 만일 세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시내 한가운데 관광객이 가장 많이 다니는 운하 옆에
대대로 이 음식을 만들어온 원조집이 있다. 탁 봐서 사
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으면 바로 그 집이다.


티엘


세트는 또한 단골 영화 세트이기도 해서, <세자르와 로잘리>(클로드 소테), <아네스의 해안><아네스 바르다>, <페페 르 모코>(쥘리앵 뒤비비에), <어린 범죄자>(작크 드와이옹) 등의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로방스의 화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