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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27. 2018

<레미제라블>의 현장을 찾아서 2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은 몽트뢰이유 쉬르 메르로 일자리를 찾으러 가다가 파리 동쪽의 몽페르메이으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테르나디에 여인숙에 세 살짜리 딸 코제트를 맡긴다. 그리고 장발장이 팡틴의 부탁으로 코제트를 데리러 갔다가 한밤중에 그녀를 만난 이 마을의 어두운 숲속에는 실제로 1865년에 장발장 샘(작품에서는 뷔송 샘)이 만들어졌다.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몽페르메이으는 숲 속의 마을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파리 북부의 여러 도시들처럼 슬럼가로 변해 높은 실업율과 범죄율이라는 고질적 문제에 시달리는 이 빈곤한 도시에서 테르나디에 여인숙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팽 풍차방앗간에서 봉디 숲까지 이어져 있는 코제트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때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위고는 1845년 9월 이 도시에 들렀다가 2주일 뒤에 <레미제라블>을 쓰기 시작했다.  



장발장과 코제트의 만남



코제트의 샘



  파리에서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인 1820년대와 1830년대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1832년 6월 민중혁명의 주요 무대인 센 강 북쪽의 보부르 구역은 1850년대부터 레 알이라고 불리는 농산물 시장이 들어선데다가 1970년대 들어 퐁피두센터까지 세워지면서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레미제라블> 2권에서 마리우스가 장발장과 함께 산책하는 코제트를 보고 한눈에 반한 곳은 라탱 가에 자리한 뤽상부르 공원이다. 지금도 이 공원에서는  많은 연인들이 찾아와 사랑을 나누고 있어 작품 속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역시 2권에서 장발장은 자베르와 맞닥뜨리자 코제트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담장을 넘는데, 그 곳은 수녀원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전에 구해 준 포슐르방이 수녀원의 정원사로 있었던 덕분에 코제트에게는 수녀교육을 시키고 자기는 포슐르방의 동생으로 신분을 꾸며 숨어 살게 되는데, 작품에서 이 수녀원은 픽푸스 거리 62번지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레미제라블>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수녀원의 실제 모델은 지금의 팡테옹 남쪽 로몽 거리 32번지에 있었던 생토르 수녀원이라고 한다. 이 수녀원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첫 만남
장발장과 코제트가 앉아 있던 뤽상부르 공원의 돌벤치



  1832년 6월 5일(1832년 6월 혁명의 첫날), 마리우스는 플리뭬 거리(<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사랑을 나누는 장소인 플뤼메 거리도 센 강 남쪽에 있는데, 작품 속의 플뤼메 거리는 지금의 플뤼메 거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센 강 남쪽 14구에 있는 우디노 거리다. 그리고 1829년 말에 장발장과 코제트가 자리 잡은 곳도 같은 장소다)를 나서 샹브르리 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로 간다. 그리고 장발장 덕분에 이 거리에서 살아 나온다. 나중에 그는 아내가 된 코제트와 함께 앞서 언급한 레 피으-뒤-칼베르 거리에서 살게 될 것이다.    

  센 강을 건너 파리 동쪽의 바스티유 광장에서 멀지 않은 레 피으-뒤-칼베르 거리 6번지에서는 마리우스 퐁메르시의 할아버지인 부유한 부르주아 질노르망이 살았다. 아버지가 워털루 전투에서 전사한 대학생 마리우스는 민중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발견하고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든다.  

  이 거리에서 서쪽으로 걸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파리 동부 마레 지구의 보쥬 광장으로 가보자. 위고 가족은 1832년 6월 혁명의 열기가 사라지고 난 같은 해 10월 이 광장 6번지로 이사했다. 그리고 여기서 1845부터 1862년 사이에 <레미제라블>을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보쥬 광장

   

빅토르 위고의 집

 


박토르 위고의 집 내부

     


 보쥬 광장 왼쪽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세비네 거리 11번지에는 코제트의 후견인이라고 자처하는 테나르디에가 살인미수 혐의로 자베르에게 체포되어 갇혀 있다가 탈출한 라 포르스 감옥의 외벽이 있었다.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이 벽에는 순찰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길 건너편의 파베 거리 24번지에 가면 지금은 도서관으로 쓰이는 라미뇽 저택이 있는데, 이 저택 오른쪽 벽면이 바로 라 포르스 감옥의 담이었다.  



라포르스 감옥


라포르스의 감옥은 이 벽 부분만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세비네 거리 11번지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최근 보수공사를 마쳐 눈에 한층 더 잘 띠는 생-폴-생-루이 성당이 보인다. 바로 여기서 1833년 2월 16일에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결혼식을 올린다. 지나가는 길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위고가 가장 사랑했던 큰딸 레오폴딘도 여기서 실제로 1843년 2월 15일에 샤를 박크리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 성당 안에 들어가 보면 위고가 딸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뜻에서 기증한 성수반 두 개가 아직도 매달려 있다.    -계속



생폴생루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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