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티아고순례길의 프랑스구간 르퓌순례길을 걷다 16

무아싹에서 오빌라르까지

by 이재형


무아싹은 수난의 도시다.

1930년 3월 3일, 타른 강이 미친 듯이 날뛰어 수심이 9미터 10센티까지 올라가면서 다리와 둑이 무너졌다. 강물이 도시를 덮쳐 120명이 죽고 600채 이상의 집이 파괴되었다. 이 당시 무아싹의 많은 건물은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로 지어져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잘 견뎠지만 9미터나 되는 물속에 잠기자 버텨내지 못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732년, 사라센 인들은 푸아티에를 향해 올라가면서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고, 전투에 패하고 나서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이 도시를 약탈하였다. 그로부터 100년 뒤, 이번에는 노르만 인들이 해적선을 타고 가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아싹을 유린하였다. 영국인들과 헝가리인들은 대포로 이 도시를 공격했다. 그리고 이제 좀 조용해지나 하는 순간 이번에는 큰 화재가 나서 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무아싹은 매우 아름다운 기념물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 무아싹 수도원에는 꼭 입장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명상에 잠겨보기를... 순례자는 입장료가 할인된다. 숙소는 성당 위쪽에 있는 구카멜수도원(Centre d'Accueil L'Ancien Carmel)이 좋다.


■ 무아싹 성당


므와싹 대수도원 성당의 서쪽 문과 팀파늄.JPG

가운데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사자들.JPG

가운데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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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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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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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미아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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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자



무아싹 대수도원 성당의 팀파늄은 앞서 말한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1,110년에서 1,13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팀파늄은 요한묵시록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한가운데에서 옥좌의 그리스도가 수정(水晶)의 바다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있다. 그리스도는 네 복음주의자(마태, 루카, 요한, 마르코)를 상징하는 존재들과 천사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래쪽과 옆쪽에는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문은 입구가 두 개인데, 왼쪽 입구는 신약의 문으로 베드로와 바울이 조각되어 있고, 오른쪽 입구에는 이사야와 에레미야가 조각되어 있다. 왼쪽 입구의 문설주에는 베드로 성인이 예수가 맡긴 열쇠를 가슴에 꼭 안은 채 발로 악마의 머리를 짓밟고 있다. 가운데 조각기둥(trumeau)의 서쪽 면에는 머리가 벗겨진 바울 성인이 그가 기록한 글들을 상징하는 책을 들고 있다. 가운데 기둥에는 사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편 가운데 조각기둥의 동쪽 면에는 신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펴들고 있는 에레미아 예언자가 조각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조각에 대해서 예술사가인 앙리 포시옹은 “역사상 최고의 걸작품이다”라고 말한다. 오른쪽 입구의 문설주에는 “자, 이제 마리아가 수태할 것이다”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이사야 예언자가 조각되어 있다.


■ 무아싹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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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에 만들어진 무아싹 수도원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이다. 회랑 모퉁이의 대리석 사각기둥에는 사도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백열여섯 개의 둥근 기둥에는 일흔여섯 개의 기둥머리가 붙어 있고, 이 기둥머리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일화(천지창조, 아브라함의 희생, 사자굴 속의 다니엘, 가나의 식사 등)나 동물과 식물 모티프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기둥머리는 성경의 일화들과 성인들의 삶을 꼭 3차원 만화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고립되어 있는 종교공동체인 수도원의 우두머리는 종신제로 선출되는 수도원장이다. 수도원장은 소수도원장의 보좌를 받는다. 대부분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베네딕트 파 계율은 기도와 노동(ora와 labora)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귀족 출신의 수도사는 노동이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힘든 일은 가사 담당 수사나 하인들에게 맡기고 수도사는 필사나 채색 장식처럼 영적인 일을 맡아 했다.

수도사는 수도 지원자로 수도원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1년 후에 수련 수도사가 되어 순종과 청빈, 순결함을 위해 죽을 때까지 수도하겠다고 맹세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서원 수도사가 된다.

몇몇 수도사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훈육 수도사는 수도원을 감시하고 만일 기강이 해이해지면 벌을 내린다. 문서 담당 수도사는 도서관과 기록실을 책임진다. 식료품을 공급하는 일을 맡아 하는 수도사도 있고, 부엌과 식당에서 일하는 수도사도 있다. 또한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담당하는 수도사, 교회 일을 맡아서 하는 수도사, 순례자들을 접대하는 수도사, 세탁을 담당하는 수도사, 간호 수도사, 건물을 관리하는 수도사도 있었다.

보조 수도사들은 종교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성직자는 아니다. 힘든 일(농사)을 하며 수도원의 살림을 맡아할 뿐 성가대의 일원으로 찬송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들은 수도사들의 생활 유형(순결함과 단식)을 따라야 하지만, 수도회 총회에서는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 즉 행정적인 결정사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몇 가지 성무일과에 참석해야 하지만 수도사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는 않고, 묵상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영적 의무를 지지도 않는다.


수도원 경내는 수도사들이 왕래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러 가는 회랑이다. 시토수도회의 예술에서 수도원 경내는 정사각형인데, 정사각형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의 네 가지 차원, 즉 육체적 차원, 지적 차원, 영적 차원, 관계적 차원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중앙 공간은 클로이스터( cloître, 라틴어로 claustrum)라고 불리며, 이 클로이스터를 주변으로 다른 모든 건물들이 배치된다. 클로이스터는 네 개(4라는 숫자는 4복음서와 4원덕, 4원소를 상징한다)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형태를 취하며, 그 안에는 흔히 샘과 수반(세정을 위한)으로 장식되어 있는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클로이스터에는 네 개의 회랑이 있는데, 이 네 개의 회랑은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서쪽 회랑), 속세를 버리는 것(북쪽 회랑), 이웃을 사랑하는 것(남쪽 회랑), 신을 사랑하는 것(동쪽 회랑)의 비유다. 각 회랑마다 기둥이 길게 늘어서 있고, 모든 기둥의 주춧돌은 인내를 상징한다.

클로이스터는 묵상의 장소인 동시에 잠시 머무는 장소로서 수도원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천국을 지상에 투사한다. 클로이스터는 수도원의 거의 모든 다른 장소로 통한다. 클로이스터는 수도원 성당에 기대어 세워져 있으며, 수도원의 건축은 거의 대부분 이 중요한 장소에서부터 시작된다.

클로이스터는 건축적, 물질적 현실인 동시에 종교생활과 기독교적 영성의 이상이다. 클로이스터 안에서 인간의 영혼은 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클로이스터는 인간이 기도를 통해 신적인 것까지 높아지는 성찰과 명상의 공간인 것이다.

클로이스터 한가운데 있는 정원은 새로운 천국을, 정원 한가운데 있는 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샘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한다. 어떤 수도원은 클로이스터 안에 묘지가 있는 반면 또 어떤 수도원의 클로이스터 안에는 향료식물이나 화단이 있다. 이 정원은 “저 높은 곳의 낙원”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생시설은 기본적인 것만 갖추어져 있었지만(욕탕은 거의 없었고 옷도 잘 갈아 입지 않았다) 수도사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얼굴과 손을 씻었다. 교회 안의 공간은 엄격하게 나뉘어 구분된다. 수도사들은 내진에 있는 성직자석에 자리를 잡는 반면 보조 수도사들은 수도사들과 같은 출입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앙 홀 맨 뒤쪽에 앉는다.

클로이스터의 다른 쪽 익면에는 “지적” 기능을 가진 건물들(회의실, 기록실, 도서실)이 있고, 또 다른 익면에는 “실용적” 기능을 가진 건물들(공동 침실, 공동 식당, 부엌, 식량 저장고, 난방실)이 있다.

회의실은 결정을 내리는 장소다. 수도사들은 베네딕토 성인의 규율에 대해 토론하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여기 모인다.

기록실에서는 종교 서적을 베껴 쓴다. 이 문서실 옆에는 추운 겨울에 잉크가 얼어붙거나 손가락이 마비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난방실이 붙어 있다. 부엌과 양호실을 제외하고 수도원에서 따뜻한 곳은 이 난방실 뿐이다.

편의상의 이유로 부엌과 식당, 그리고 식량 저장고는 붙어 있다. 음식은 문을 통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져갈 수 있다.

공동 식당에는 일반적으로 벽에 설교단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서 수도사 한 사람이 식사 시간 동안 성서를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침묵을 지켜야 한다. 환자에게 먹일 음식을 제외하고는 음식에 고기도 넣지 않고 기름도 치지 않았다.

역시 편의상의 이유에서 공동 침실은 수도원 성당의 가로 회랑과 연결되어 있었다. 즉 수도원 성당과 직각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도사들은 하루에 여덟 차례씩 (야과경, 조가, 일시경,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저녁기도, 끝기도) 기도를 드리러 갈 때 자신의 침대에서 제단까지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공동 침실은 처음에는 공동이었지만 규율이 느슨해지면서 때로는 아늑한 개인용 방으로 바뀌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건물들은 오직 수도사들만을 위한 것이며, 별채 건물(공동 침실, 공동 식당 등)은 오직 보조 수도사들만을 위한 것이다. 순례자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숙박소 등 다른 건물들은 외부와 한층 더 밀접하게 접촉하며, 농업용 건물(측사나 비둘기 집 등)이나 산업용 건물(대장간 등)은 수도원의 경제생활과 관련되어 있다.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병은 죄를 저지른 데 대한 징벌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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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에스팔레의 속소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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