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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퓌길 순례, 렉토르의 블루는 변화의 색

by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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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투르는 르퓌길 순례자가 르퓌를 출발, 무아사크를 지나 대략 3주일 정도면 도착하는 도시다. 순례자는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저 높은 곳에 자리잡은 렉투르를 향해 기어오른다.
렉투르는 하나의 색깔로 상징되는데, ‘렉투르의 블루Bleu de Lectoure’가 바로 그것이다. 대청pastel이라는 식물의 잎은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청색 염료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원료였다. 프랑스에서는 주로 툴루즈와 알비, 카르카손Carcassonne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대청을 재배하여 푸른색 천연 염료를 생산했고, 그것을 유럽 전역에 수출한 덕분에 이 지역이 크게 번성했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인도에서 인디고라 불리는 청색 염료가 수입되면서 이 지역의 대청 재배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그랬던 것이 1995년에 앙리 랑베르라는 벨기에 사람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다시 대청을 재배하기 시작해 유명한 ‘렉투르의 블루’를 생산·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의류와 스카프, 비누, 화장품, 안료 등에 쓰이는 렉투르의 블루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청색이라고 할 수 있다. 르퓌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의 검은 마리아 상은 이따금 망토를 갈아입는데, 오래전에 나는 그녀가 렉투르의 블루로 염색한 망토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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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렉투르의 블루는 압델라티프 케시시Abdellatif Kechiche 감독이 만든 〈아델의 삶: 1장과 2장La Vie d’Adèle : Chapitre 1 et 2〉(한국에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에 등장하는 아델의 블루다. 인류학자인 아르놀드 방주네프Arnold Van Gennep에 따르면, 인간은 분리의례와 과도의례, 통합의례의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아델 역시 엠마가 인도하는 대로 이 세 가지 의례를 거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새로운 여성으로 성장한다. 이때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엠마다. 하지만 입문자는 언젠가는 자신을 인도한 자의 손을 놓고 혼자 걸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말한 대로 “새는 알을 깨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델은 엠마와 결별한 뒤 푸른색 옷을 입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당당히 걸어간다. 그녀의 블루는 성장과 변모,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렉투르의 블루 역시 순례자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따뜻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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