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데쿠베르트
콩크를 떠나 그다음 목적지 리비냐크르오
Livihac-le-Haut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산등성이를 따라 곧장 리비냐크르오로
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드카즈빌Decazeville을 거쳐 리비냐크르오로 가는 것이다. 콩크에서 노아이아크
Noailhac까지 1시간 50분, 그리고 노아이아크에서 에르 퐁테이으
Air Fonteilles까지 1시간 걸린다.
순례자를 위해 마련된 휴식 공간인 에르 퐁테이으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5분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 길이 양 갈래로 나뉜다. 똑바로 나 있는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은 드카즈빌을 거쳐 가는 길인데, 이 길이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나는 다섯 차례의 순례 중에서 두 번은 드카즈빌을 거쳐서 갔고, 나머지 세 번은 저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산등성이를 따라 갔다.
드카즈빌로 들어가는 길목 왼쪽에 거대한 분화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분화구가 아니라 데쿠베르트 Découverte라고 불리는 노천광산의 흔적이다. 이 광산은 1892년에 세워져 2001년까지 채굴되었다. 이 광산의 길이가 3.7킬로미터이고 너비가 2.5킬로미터나 되는 것을 보면 드카즈빌이 상당히 큰 광산도시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광산은 2001년에 모두 문을 닫았다.
드카즈빌
2010년 4월 처음으로 르퓌 순례길을 걸었을 때, 나는 마치 폐허처럼 인적 없이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워 보이던 이 도시의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1990)의 회색과 검정색 탄광촌을 떠올렸다.
대학생 김기영(문성근)은 시위를 주동하다가 수배되어 폐광 위기에 놓인 탄광촌으로 들어온다. 그는 연탄공장에 잡역부로 취직하여 다양한 인간들을 만난다. 연탄공장 사장, 아버지가 자기 친어머니를 버렸다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그의 아들(성철, 박중훈 분), 그리고 다방에서 티켓을 팔아 살아가는 영숙(심혜진 분).
영숙은 기영과 사랑에 빠져 티켓 파는 일을 그만둔다. 광산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려 하고, 친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성철이 티켓 팔기를 거부하는 영숙을 때린다. 이를 말리던 기영은 경찰서에 끌려가 위장 취업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 탄광촌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영숙도 그를 따라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짐을
가지러 다방에 갔던 그녀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붙잡아 두려는 성철을 찔러 경찰서로 끌려간다. 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기영은 결국 혼자 이곳을 떠난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자들은 오늘의 고통을 희망으로 여긴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프랑스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찬란한 미래로 바뀌었을까? 아니다. 저임금과 그로 인해 견고하게 고착된 빈곤, 대물림되는 가난, 실업에 대한 일상적 공포, 소득 양극화, 사라져 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 거듭되는 갑질…….
바로 이것이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이며,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