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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5. 2018

위대한 자유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재형 옮김, 문예출판사




내가 이해한 것은, 이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았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니 같은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살아 있는 가슴과 따뜻한 목소리,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남자.  


바다, 가을의 부드러움, 햇빛에 잠긴 섬들, 영원히 벌거벗고 있는 그리스에 불투명한 베일을 씌워주는 가랑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 사람은 복을 타고난 거야. 

여자, 과일, 이상... 이 세상에는 수많은 즐거움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따사로운 가을날, 눈에 보이는 섬들의 이름을 하나씩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며 이 바다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만큼, 천국의 문을 열어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즐거움은 없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쉽게, 이렇게 평온하게 현실의 세계를 떠나 꿈의 세계로 옮겨갈 수는 없다. 이 두 세계의 경계선은 사라지고, 작은 돛배의 진홍빛 돛대에서는 나뭇가지와 과일이 자라난다. 이 기적이 마치 피할 수 없는 필요의 꽃처럼 돌연 나타나는 곳은 그리스에서 오직 이곳뿐이다.  


하나의 열정에서 벗어나 더 고상한 열정을 품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예속이 아닐까? 소신을 위해, 종족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우리가 높은 곳을 지향하면 할수록 우리를 묶는 노예의 사슬은 점점 더 길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이상은 더 넓은 곳으로 나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사슬의 한계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죽어버릴 수도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일까?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덮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붓다와 하나님, 조국, 사상... 이 온갖 악몽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켜야 해... 붓다와 하나님, 조국, 사상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 지어다!’






조르바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여 있는 줄이 다른 사람들이 묶여 있는 줄보다 조금 더 긴 것뿐이지요. 보스, 그렇게 긴 끈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기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 줄을 잘라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를 겁니다!”

나는 허세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내 안에 벌어져 있던 상처를 건드려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보스, 그건 어려운 일이예요.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 줄을 자르려면 광기가 필요합니다. 광기가 필요하다고요, 알겠어요? 모든 걸 다 걸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은 항상 머리가 앞서니까 바로 그 머리란 놈이 당신을 잡아먹고 말 겁니다. 인간의 머리는 꼭 구멍가게 주인 같아서 꼬박꼬박 치부를 해요.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줬으니까 이익은 얼마를 봤고 손해는 얼마를 봤다, 뭐, 이런 식으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소시민인데, 가진 걸 몽땅 다 걸지는 않고 항상 일부는 남겨두지요. 절대 줄을 자르지 않는 거죠! 아니, 오히려 더 꽉 쥐고 있어요. 행여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끝장나 버리니까요! 하지만 줄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글쎄, 사는 게 너무 밍밍하지 않겠어요? 이 맛도 없고 저 맛도 없는 카밀라 차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뒤집어서 보게 만드는 럼주랑은 비교가 안 되는 거지요!”


적막함,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알 고운 사막. 공기는 분홍색과 푸른색, 노란색으로 흔들리고, 관자놀이는 긴장을 풀고 느슨해지며, 영혼은 미친 듯 소리를 내지르더니 그 어떤 고함도 화답하지 않는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적막함... 적막함... 그리고 문득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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