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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관 걸작 탐방 4

-용감한 자 장 2세

by 이재형

<용감한 자 장 2세>,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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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미술관의 리슐리외관 3층(프랑스식으로는 Deuxieme etage)으로 올라가서 프랑스 회화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바로 이 "용감한 자 장 2세"다. 60 X 44.5 cm.
누가 언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대략 14세기 중반으로 추측된다.
석고 도료로 밑칠을 한 다음 그 위에 템페라 그림물감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초상화인데, 옆얼굴의 헝크러진 머리와 다듬어지지 않은 눈썹, 무거운 눈꺼풀, 아무 장식 없는 옷차림 등 한 나라의 왕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에서 1309년에서 1418년까지 이어진 로마교황의 아비뇽 유수 당시 이태리에서 건너온 화가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미 이 화가들은 14세기초부터 인간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충실히 재현하는 데 관심을 보여왔던 것이다.


장 2세(1319 - 1364)는 1350년 아버지인 발르와 왕조의 필리프 6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은 페스트가 번지고 칼레를 영국군에게 빼앗기고 파리 시장 에티엔 마르셀이 반란을 일으키고 농민폭동이 수 차례 일어나고 영국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는 등 시련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왕위계승권을 놓고 왕족들끼리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름만 용감한 자 장 2세지, 이름에 걸맞는 지략이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욕심많고 충동적이고 돈 펑펑 써대고 노는 거 좋아하여 호시탐탐 프랑스를 노리는 위협적인 영국과 귀족, 상인 계급을 상대해가며 프랑스를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인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1356년 프와티에에서 벌어진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패배, 런던에 포로로 붙잡혀가고 말았다.



Capture_Jean_II.jpg 프와티에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는 장 2세.



그가 런던탑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지라르 도들레앙이 이 초상화를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그는 몸값을 지불하고 아들인 앙주공 루이를 인질로 맡겨놓은 다음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들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자 영국과 했던 약속을 지킨다며 다시 런던탑으로 돌아가 여기서 1364년에 세상을 떠났다.



Retour_en_angleterre_de_Jean_II.jpg 영국으로 돌아가는 장 2세의 모습을 그린 채색화



그런데 그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것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영국 여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는 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림 위에는 « Jehan roi de France »라고 쓰여 있는데, 그림이 완성된 후에 들어간 이 서명은 "나는 프랑스와 왕이다" 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그림이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려졌다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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