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감옥

by 성게알

내뱉은 말에 갇힌다는 걸 믿는다. 굳건히.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말은 한 사람의 신념이나 가치관, 성격, 성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사실 정반대임에도 말에 의해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난 그런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봐온 듯하다.


20대 초반에 연애를 시작하던 연인이 사랑한다는 말은 가볍게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난 후로 1년이 다 돼 가서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때는 굳건히 그 말이 진짜인 줄 믿었다.
한참 몇 년이 흐르고 20대 중반에 소개팅한 남자가 일주일 만에 사랑한다고 하자 내가 정색을 하며 진짜냐며 되물었다. 꽤 공격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더 지나 20대 후반에 하게 된 연인에게 이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이랑은 2개월이 지나도 아무 표현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마음을 누른 채 상대방이 표현해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되면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한다고 말하리라.
그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20대의 중반을 지나서 사랑한다는 말을 참는다는 건 감정을 억누르는 것 밖에 되지 않구나.
사랑한다는 말은 현재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다가 늪에 빠지는 것밖에 되지 않구나.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마음은 가늠할 수 없다. 어느 정도가 사랑의 시작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그 사람의 손바닥에 사랑한다고 쓴 후부터는 서로에 대한 대화가 물 흐르듯이 통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이 관계가 정상적인 게 맞는 걸까 하며 의심하던 모든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됐다. 그리고 며칠 뒤에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때 물었다. 당신은 아직 날 사랑하지는 않냐고. 그랬더니 상대방도 똑같이 말했다.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서 나랑 똑같은 시간을 의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의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아주 많이 찼다고.
그때 내가 한 생각은 '아, 말에 갇혔구나.'

나는 20대 초반에 들었던 말이 오래도록 내 신념이라 믿은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 다른 연애를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 말에 갇혀있었다. 그래서 생긴 문제였다. 사랑한다고 하지 못하니 사랑한다는 마음을 의심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했고. 상처받기 싫어 서로 한 발씩 물러나 있었기에 관계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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