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리 엄마는 어떤가.
엄마는 10년 동안 친구를 보고 살지 않았다. 친구를 안 보고 싶다기 보단 안 좋은 일로 상처받고 인간관계를 싹 정리한 후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외지에서 근 10년 동안 홀로 다시 시작한 후 다시 친구, 동료들을 만들고 활기도 되찾았지만 옛날 친구들을 만나보라는 권유는 줄곧 마다해왔다.
그러면서도 내내 그리워하던 엄마는 다시 만나면 또 안 좋은 모습들도 보게 되고, 그럼 실망하고. 그런 것보다는 이렇게 잘 지낼 거라고 믿고 그리워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난 그게 무엇인 줄 알았다.
엄마는 안 좋은 시절에 엮였던 인연들은 좋고 나쁘고 다 끊어내자 마음먹었고 그렇게 살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엄마의 마음이 회복되고서는 그런 일들은 싹 묻어버리자 해놓고서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는 데에만 인색했다. 상관없던 좋은 인연들까지 지워버리고 싶다는 엄마를 보면 그 과거에 갇힌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과거는 신경 쓰지 않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던 엄마가 갑자기 가족들과 술 한잔 하고선 기분이 좋다며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 보자고 했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엄마는 친구들과 밤새 회포를 풀었고 다음 날 여담을 들으니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또 그때 알았다. 엄마는 말에 갇혔었구나.
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이 더 이상 진심이 아니게 된 지는 한참이 됐지만 엄마는 그 말이 결국 저주가 되어 그 말대로 살아온 것이었다.
엄마를 보며 한 번 더 깨달았다. 저렇게 안타깝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무슨 말이든 경계하며 살아야겠구나.
언젠가부터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도 잘하지 않았다. 말에 갇힐까 봐서다. 그 후부터는 내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자신 없는 태도도 사라졌다. 모든 부분에서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 같았다. 그러고 나니 더 활발하고, 더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 이젠 사랑한다는 말도 주저 없이 할 수 있게 됐고. 말은 위험하다.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도 진짜 당연한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사실 더 많다. 이제는 말에 갇혀 아쉬움을 만드는 일은 최대한 적게 하고 싶다. 물론 말을 해야지만 사실이 되는 것도 있고, 커지는 마음 같은 것도 있고, 표현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을 의심하고 깨부술 수 있는 자각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