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간에 현실감이 뒷목을 스치고 지나갈 때 발끝부터 밀려 올라오는 서늘함을 느꼈다.
갑자기 돌아온 정신에 거의 환상과 다름없는 현실에 살고 있었음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경계해야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게 하는 것, 아무것도 안 들리게, 불행하고 어두운 것들은 죄다 못 느끼게 만드는 것.
그래서 무엇이든 믿고 싶게 만드는 것.
알면서도 최면처럼 빠져드는 그 오감을 언제는 꽉 다물어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울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감정의 리듬은 고장 나고 곧 신체까지 점령해서 심심치 않게 명치를 쪼그리고,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난 이렇듯 너의 얼굴을 보면 어디 한구석이라도 꼭 아픈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손끝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한낱 무력한 사람이 되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굽었던 등허리를 펴고 조그맣게 되뇌었다.
'현실에 살자, 현실에 살자...'
내 의지가 환상에 질 수 없어 최면을 걸었다.
'현실에 살아. 현실에 살아.'
그러자 머리 안으로 네 얼굴이 두-웅 떠올랐다.
자꾸만 지고 싶은 마음이 꾸물꾸물 올라온다.
이렇게 한 번씩 진짜 현실이 돌아오면 나는 곧잘 알아보지만 얼마못가 눈을 감는다.
오감이 질 준비를 했다.
조목조목 현실감을 되찾을만한 항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원래 앞날을 미리 걱정하는 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야.'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싶게 하는 마음을 너는. 먹게 만든다.
오늘도 실패했다. 내일 또 한 번 환상과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