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쭉 생각해 왔다. 누군가가 말하는 '나'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조차도 일치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고 소개하던데 난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항상 어려웠다. 어떨 때는 뾰족하다가, 어떤 때는 왜 저러나 싶을 만큼 무디다.
자신에 대해 무관심해서 그런 걸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메모장에 열심히 적어나가기도 했다. 남이 좋아하는 것을 적는 것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게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때 상태로 정의됐다. 우울한 때엔 조용한 사람으로, 화가 나는 시기엔 욱하는 사람으로. 그게 나인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감정일 뿐이었다. '나' 그 자체가 아니었으니, 시시때때로 바뀌는 마음을 어디, 하나로 파악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더 크게 감정에 잠식당했던 것 같다. 스스로 태그를 붙인 대로 살았으니.
감정이 아닌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고 나니 이젠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어떤 취향이고, 어떤 성격인지. 그렇게 다시 공부하고, 손봐가며 하나씩 애정을 가졌다. 고집을 부리지만 굽히지 못할 가치관이 있다는 점, 참는 게 싫지만 모두가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하는 점, 질투가 많지만 표현이 많은 점, 집순이인 줄 알았는데 밖에만 돌아다니는 점 등. 애정 어리게 봐주면 내게서 싫은 점도 좋은 구석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자애를 가지기 충분했다. 기왕이면 예쁘게 봐주고 싶고. 표현해 온 것보다 더 예쁜 사람이기도 했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애정을 가지게 된다는 말, 사랑을 받으니 더 예뻐진다는 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