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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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알

나의 마는 희생적이기도 이기적이기도 한 사람.

아이 다섯을 낳고서 일과 육아, 집안일을 병행해야 했지만 부지런하지는 않았던 사람. 많은 걸 포기했지만 우릴 버리고 열심히 도망 다녔던 사람. 그래서 그걸 미안해하면서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


지금까지 사이좋은 부모와 자식 사이라 남들은 의아해할 테다. 그녀도 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

내 블로그에선 그녀에 관한 글을 쓰며 멍울로 표현했었다. 내가 당신에게 멍울이기도, 당신이 나에게 멍울이기도 해서.


그녀는 다섯 쌍의 눈동자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게 숨이 막혔던 것일까 자주 도망을 다녔다. 여러 번 찜질방을 가더니 친구집, 대뜸 지리산 꼭대기를 향해 가더니 또 거제도였다. 그럴 땐 꼭 연락이 안 되고, 모습도 안 보이다가 며칠 만에 전화로 자신의 위치를 밝힌다.


쌍방이 되지 않는 관계. 기다리게 하는 사람. 그것이 엄마와의 관계였다. 그녀는 줄곧 우릴 사랑했지만 자주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녀가 허락하기 전엔 만날 수도 연락할 수도 없었으니 가족을 잃은 듯 외롭고, 서글펐다. 어렸을 때 그녀가 미웠던 수많은 이유 중에는 분명 그건 없었는데 성인이 되고 글을 쓰고 나니 알게 되었다. 엄마가 떠난 게 문제가 아니라 남아있는 내가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고. 자주. 오래.


그 시간들을 모조리 지나오고 엄마는 여전히 거제도에 있다. 몇 년째 있었으니 자리 잡은 듯싶지만 난 아직도 그녀가 다시는 잠수를 타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다. 다만 옛날과 달라진 건 그녀에게 엄마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현재는 엄마가 보고 싶으면 거제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옛날에 있던 슬픔도 가라앉아 평온할 즈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우릴 보러 온 시간보다 우리가 엄마를 보러 간 시간들이 월등히 많다는 걸. 자주 시간이 없고, 자주 귀찮고, 자주 비효율적이라 엄마는 자주 그 자리에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달려가는 거라면 그녀에겐 우릴 보지 않아서 생기는 슬픔 같은 건 없는 걸까 싶어 슬퍼지기도 했다. 이런 관계는 이제 당연해져 버렸지만 가끔은 서운하다. 우린 항상 엄마를 찾으러 다녀야 했던 사람들일까. 확실히 엄마는 내게 멍울 같다. 내 가슴, 목구멍을 탁 막고 눈까지 멍울지게 만드는 사람. 그래도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래서 미안해지는 사람. 너무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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