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꿈이 없는 이들을 안타까워했다.
현실과 타협해 취업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를 선택해 간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꿈을 두고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는지. 어떻게 꿈이 없을 수 있는지. 열아홉에 평생 할 일을 벌써 타협하는 게 바보 같다 여겼다. 거기에 내가 걸려 넘어질 줄은 모르고.
졸업하고 몇 년간 꿈과 동떨어진 일을 했다. 현실이 괴로웠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가기 전 애처럼 엄마 품에 울다 깨달았다. 꿈이라고 생각해서 놓지 못했던 건 아니었나.
오랜 시간 염원했기에, 자존심이 상하기에 그 꿈을 이어가고 있다는 명목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괴로운데 '꿈' 한마디가 다신 놓을 수 없는 족쇄가 된 것 같았다. 그 후 꿈이란 말은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암담하기만 한 것들을,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것들 대체로 좋아해 왔다. 연기도, 글도,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취업했다 한들 계속해서 선택받기 위한 어필을 해야 하니까. 더군다나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기를 습관처럼 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어렸을 적부터 평범하기만 한 것은 싫다고 어떻게든 특별해지고 싶다고 으레 생각해 왔었는데 그것이 독이었을까, 득이었을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지만 난 평범하게 살 수는 없구나 씁쓸하기도 했다.
단 한 번도 예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분명히 그 계통이지만 내가 하는 건 예술이란 자각을 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 정도의 고귀한 말을 붙이기엔 실력이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좀 더 흘러 (그러면 좋겠지만) 밥 벌어먹고 살 거라는 각오도 필요 없이 그냥 꾸준히 좋아하자는 마음이 들자 알 수 있었다. 연기와 글로 내가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고. 그게 내 숨통을 틔어준 거라고. 난 속에 있는 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최선을 다해 마음을 얘기하고 있었나 보다.
이러니까 예술과 멀어질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