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은

by 성게알

꽁꽁 닫아놨던 그 사이로 아주 미세한 바람이 들어차요. 감정이란 건 아주 실낱같은 구멍에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었단 걸 잊었어요.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을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의연히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요. 조금씩 되는구나 싶었는데요.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난 공백에 잠시 망각한 것뿐이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이 성숙해진 줄 알았던 거예요. 당신 한 사람 만나면 금방 빼앗아 겨버릴 마음은 여전데 말이죠.

이제부턴 마음이 나불낄 거란건 안 봐도 훤해요. 당신 눈을 한 번 깜빡이면 나비효과처럼 돌아올 테죠.

그 사람은 오롯이 한 자리에 서있어도 내 시선만 이곳저곳으로 동치고 말 거예요.

이제는 나보다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는데요. 아니,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는데요. 불쑥 삶으로 침범합니다. 그건 찰나와 같아요. 실낱같은 구멍이 남아있다면 그 사이를 비집고 이내 모든 걸 차지하죠.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요. 그렇게 살며 불행하지 않을 자신이요.


그냥 스스로 내버려 두길 바라고 있어요. 내가 그것들을 놓을 수 있길 용기내고 있어요. 근데 이거 도망치는 거예요. 미리 겁을 내는 거예요. 행복할 자신 있으면서 불행할까 봐, 아플까 봐 그러는 거예요.

벌써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옛날로 돌아가버렸어요.

마냥 아파하는 게요. 반짝임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는 게요.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어요. 마음의 주도권이 내게 있어서 겁내지 않고 마음껏 누려보고 싶어요. 하지만 실패한 것 같아요. 내 마음을 단단하게 감쌀 걸 그랬어요. 실낱같은 자리 따윈 만들지 말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늦은 밤 잠 못 들지 못할 이유가 생기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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