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도 모르고 마음을 내보이길 좋아했을 때, 쏟는 만큼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때엔 잦게 들여다보던 쓰린 속은 적당히 멀리서 지켜보기를 택하는 지금의 나는 잘하지 않는다. 전처럼 자주 상처를 받지도, 그렇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 방어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곧잘 내 취향과 성격과, 생각들을 자주 들여다보기에 쓰린 속을 부여잡을 일은 소주 두 병을 연거푸 들이마시고 뻗어버린 날에만 있는 일이었다.
더 이상 감정과 생각들을 가리는 짓은 되도록 지양하기로 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시집 같은 일기가 아닌 일기다운 일기가 적혀나가고 있었다. 딱히 일상을 방해받거나 거슬릴 것도 없었으므로 은밀한 이야기 또한 생성되지 않던 유치한 그림일기 수준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정말 신기하게 일기를 거짓말로 적기 시작함과 동시에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감정이라는 건 이토록 사실적이다.
두세 번 적어간 일기는 속마음과 다르다는 걸 알고는 사실대로 고쳐나갔다. 난 사실 지금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오랜만에 요동이 찾아온 것 같아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고. 하등 소용없어진 것 같은 감정의 자립에 내 긴긴 노력과 시간이 원망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주를 가만히 내 쓰린 속을 들여다봐야 했다.
이것 또한 마음과 생각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면의 두려움 때문에 마음과는 다르게 선택하길 원하는 생각이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마치 이젠 방법을 안다는 듯. 원인부터 문제, 결과, 해결책까지를 나누는 내면이 신기했다. 진짜와 가짜를 알아보는 힘이 생기다니,
자기 연민을 걷어낼 수 있다니.
공포를 제거하고 남은 진짜를 남겨놓으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답이 나왔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기 전, 원인을 마주했다. 그때 느낄 수 있었다. 가라앉은 단전에서 나오는 내 차분한 숨결.
해야 할 일을 직시하게 된 사람의 호흡은 금세 균형을 잡는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이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이 감사해지는 순간.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내 나이를 사랑하고 있다.
난 이렇게 고른 숨으로부터 곧잘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