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내가 크게 아팠을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의사들도 쉽사리 알아내지 못한 병을 앓을 때.
고열로 수포가 난 얼굴 앞에서도 덤덤한 엄마가 있었다. 그 얼굴이 밉게 느껴질 만큼 나의 어둠은 엄마를 향해 있었는데, 내가 아픈 게 그녀 탓인 줄만 알았지 다른 이유는 찾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는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간병침대에 앉아 내게 손을 뻗은 엄마가 그랬다.
"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
무미건조한 말이라, 그날도 역시 덤덤한 얼굴이라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라고 하는 그저 그런 말인 줄만 알았다.
몇 년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 동생이 아팠다. 쉽사리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병이었다. 얼떨결에 학업으로 멀리 떨어져 나와 함께 지내던 동생의 보호자가 되었다. 수업을 가던 친구들 사이에서 껄떡이는 숨을 간신히 부여잡는 동생을 마침 발견하자 난 그때의 엄마의 얼굴처럼 덤덤하게 친구들을 보냈다. 동생의 뒤집힌 눈동자가 곧 흰자만 보일 즈음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자 그렇게 넓은 대학교 캠퍼스에서 둘만 남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 뺨을 때렸다. 지금 이 순간에 동생을 살릴 사람은 나뿐이라고. 우왕좌왕하면 영영 이 순간을 놓치고 말 거라며 바로 인공호흡을 했다.
곧이어 터지는 동생의 격한 숨을 느끼고선 아픈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더 굳어져갔다. 도저히 표정이 물렁거릴 수 없었다.
어리숙한 이의 고통을 바라볼 때 함께 울어줄 수 없는 건 그 사람의 어리광이 연약한 마음을 만들어 아픔을 이겨낼 마음조차 물렁이게 만들까 봐였을 거다. 지키고자 하는 자의 마음은 그렇게 단단한 법이었다. 그렇게 나도 그맘때의 동생을 보며 자주 속으로 빌었다.
아픈 내 이마를 쓰다듬던 장면은 삭제되고, 그 손길에 얼마나 큰 걱정이 담겨있는지 느끼지 못하던 시간들 동안 줄곧 엄마를 차갑게 만든 건 내가 그렇게 기억하기로 작정한 것도 한 몫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이 있은 후로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생겼다. 동생이 아픈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도 덕분에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그게 얼마나 사랑해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던 마음들.
엄마는 날 뼛속깊이 사랑했고, 내가 느낀 마음들은 한낱 어리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