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내게 남아있는 것이 하나라고 믿었다. 그 하나는 인생 전부고, 그것이 흔들릴 땐 같이 흔들렸다. 내 머릿속엔 가족도, 남도, 친구도, 사랑도, 하물며 떠돌이 강아지도 있는데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문제인 줄 알았다. 나 빼고 다 소중한 마음.
그래서 이 사람에게 주던 관심 조금, 저 강아지에게 주던 관심 조금, 취미에 주던 관심 조금을 빼서 날 생각할 틈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거기엔 걱정이 들어찼다.
그리고 가장 소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것이 무너졌을 때 난, 생애 끝에 다다랐다고 느꼈다.
사랑은 상대를 나와 같다고 느끼는 것이라 들어왔는데. 그래서 내 것을 더 줘도 아깝지 않은 거라고 들어왔는데 곧이곧대로 하다 보니 당신은 곧 내가 되어, 떠나감과 동시에 날 무너뜨렸다.
성심성의껏 나와 동일시해왔는데. 애정의 깊이만큼 불행의 깊이도 같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 뒤로 온전히 한 사람에게 역할을 주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두 사람이 한 역할을 할 순 없어도 한 사람의 절반만큼 손을 뻗고 내가 나머지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를 반만 믿고, 형제를 반만 믿고, 친구도, 사랑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 반만 믿었다. 나머지의 믿음은 모두 내게 쌓아두고 있었지만 그것이 곧 나를 믿음을 얘기하진 않았다.
반만 손을 뻗다 보니 상대에게 내 몸이 기울지 않았다. 떨어질 위험은 없어도 기댈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였다. 독립적이기보단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시 팔을 쭉 뻗기 시작한 건. 반만 믿고선 안 외로울 수,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온전히 충만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부터였다. 조금씩 선을 넘어 그 사람의 울타리에 들어서보니 기대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한 번 더 눈을 감고 싶어 졌었다.
그리고 꽤 충만해진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난 늘 쉽게 남을 믿지 않게 단속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 괜찮다며 다독인 덕분에 의연한 사람이 된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
내 사람 중 어떤 이가 떠나도,
일이 잘 안 풀려도. 그게 내 인생 전체가 아님을 안다. 또 흔들릴지 언정 내가 가진 99가지의 것들을 바로 직시할 수 있을 만큼 잃어버린 한 가지에 매여있지 않는다. 난 언제나 소중한 것들이 도처에 널렸고, 날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을 알고 나니 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하는 일이 썩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