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하다 : 눈을 비비고 볼 정도로 매우 놀라다.
괄목할만한 변화가 생겼다.
그건 스스로도 알아채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때때로 불안하기도, 수줍기도, 거북하기도 하여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결핍의 상태가 곧 호기로운 것이라며 제법 똑똑하지만 완미한 고집으로 살았는데 그것들이 지금껏 나를 지켜주기도, 막아서기도 했다. 그래서 '데미안' 책 속에서의 명언처럼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찰나에,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막연히 지낼 때에 비로소 그런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 마음이 들 무렵, 마침 책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철학자 아들러에게 자극을 받은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진정한 자립을 하는 것. 내가 가장 동경하고 궁금했던 것이 어른이 되는 거였는데 그 책에선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자립이고, 그것은 곧 사랑이었다. 그렇게 점점 내게도 새로운 변화를 꾀할 때가 됐다는 감각들이 몸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감히 두려워하는 것은 응당 상처받기를 각오하는 것. 그것을 해야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아가는 것이었다. 정답이 아니었대도, 사람들의 호들갑에 휩쓸려버렸대도 난 어쩐지 그래야만 한다고, 그리고 이젠 그럴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반가워했다. 또 조금은 변화한 날 보며 이제야 고집을 놓고서 유연해졌다 여기는 듯했다. 반대로 사람들의 반응에서 그동안의 날 투영시켜 본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난 얼마나 좁은 겁 안에서 살아왔던 걸까.
사실 발을 내디뎠다고 해서 영영 두렵지 않다거나, 겁 없이 헤엄을 치게 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발을 빼고 싶어 하고, 주춤거리기도 하며,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한참을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나 매번 나아가야 한다고 결론이 나는 것만 다를 뿐이다. 전에는 홀로 올곧이 서 있게 되는 것이 최종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세상을 둘러보니 둘이여도 올곧이 서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결국 가장 어려운 단계라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하지만 조금은 설레기도 하다. 진정한 자립을 하게 되고 어른으로 거듭날 나의 모습과, 내 세계에서의 주어가 '나'가 아닌 '우리'로 거듭날 때의 과연 어떻게 눈이 틔이게 될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