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처럼 살기 프로젝트를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하고 있다.
모든 걸 꾸준히,
독서를 한지는 2년 6개월.
다이어리를 쓴 지는 2년 1개월.
달리기를 한지는 1년 8개월.
블로그를 한지도 1년 8개월.
자기 확언을 한지도 1년 8개월.
브런치스토리를 쓴 지도 8개월이 되었다.
그중 독서를 하다가 만난 문장이었는데 소설 [마담 보바리]에 대한 견해를 써놓은 페이지였다.
'엠마는 별다른 재능이 없지만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낭만적 환상이 사로잡혀있다. 엠마를 괴롭히는 것은 결혼생활자체보다는 자신의 오만이고 그 오만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망상에서 온다. 엠마는 삶 속에서 자신을 현명하게 만들고, 즐겁게 해 줄 여러 가지를 찾아 헤맸다. 독서나 공부, 문학 창작, 미술 데생, 피아노, 자수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
그녀는 이탈리아 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 여러 가지 사전들과 문법책 그리고 많은 백지를 사놓았다. 또한 역사나 철학 등의 진지한 독서를 시도했다. (중략) 엠마의 독서는 시작하다 말고 장롱 속에 처박아둔 자수와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것들을 손에 집었다가는 집어치우고 또 딴 것으로 옮겨갔다. / 소설 [마담 보바리]중에서
마담 보바리 소설 전체를 읽고서 그 인물의 서사와 성격, 생각 등 캐릭터 자체를 파악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책 속에서 그 대목을 만났을 때 흠칫 날 점검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자기 계발. 분명히 그 시작은 현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발전 없는 내가 싫었던 것일 수도, 그때 상황에 만족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전자와 후자는 굉장히 다른 것인 게 전자는 내 문제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 문제임을 인지할 수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경우였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내가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었을 수도 있었다. 난 내 부족함을 알고 발전을 추구했는가
아님 현실이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발버둥을 친 것인가.
그래서 곰곰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2년 전 일하던 곳 사장님이 달리기를 권했을 때부터 생각하니 그전에 이미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고 있었다. 그럼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던 2년 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니 서울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내려온 시간부터 아마 깨달았던 것 같다. 문제는 내게 있음을.
아무것도 못한 데에는 세상 탓이 아니라 내 두발을 움직이지 않은 탓이라고.
아마 그때의 실패가 불만족스럽고, 나태한 내가 질질 끄는 모든 시간들이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절정에 달한 탓인 것 같다.
의문의 시작은 엠마 보바리에 대한 해설이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과연 칭찬할 만한 것 아닌가. 그것이 설사 내가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들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영역 아닌가.
그러나 나의 경우에 대입했을 때 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오만이 아니었고, 보잘것없음을 인정하지 못한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마담 보바리 소설을 읽게 되는 날에 엠마 보바리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찾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마 다를 거라 확신하며 자신 있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