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Oct 07. 2016

회사 때려 치워도 인생 안 망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걱정과 염려가 아니라...

나 회사 그만두기로 했다. 오늘 부장님한테 말했어.


얼마 전에 친한 친구가 퇴사했어. 첫 출근부터 힘들어했으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지. 결단을 내린 기분이 어떻냐는 물음에 친구는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답했어. 무섭다고. 

 


하긴 사표 낸 심정은 그런 거였지. 4년 전, 첫 회사에 입사한 뒤, 석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둔 날이 떠올랐어.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더라. 어떻게 들어온 회산데. 고작 이것도 못 참아 낸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 용기를 낸 날 밤. 나는 사실 두려웠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을 때만 해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문제는 매일 아침 진행하는 아이템 회의에서 시작됐어. 브레인스토밍 수준의 가벼운 회의였는데, 난 대단한 프레젠테이션이나 하는 양 대본까지 만들어서 준비해 가곤 했어. 그런데 회의실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 주눅이 드는 거야. 선배들의 실망한 눈초리가 견디기 힘들고, 그럴수록 실수는 잦아졌어. 악순환이었지. 급기야 막판에는 회의가 무서워서 회사 가기가 싫더라.  



왜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랩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좀처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참가자들이 있잖아. “이번엔 진짜 뭔가 보여 줘야 한다”고 결심만 하다가, 끝까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탈락하는 애들. 그게 나였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출근하기 무서워서 울었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날. 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사표를 냈어. 


사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건 아니야. 내내 힘들었는데, 여기서 낙오해 버리면 영영 표류하게 될까 봐 꾹꾹 참았던 거지. 백수가 되면 적어도 석 달은 신나게 놀려고 했었는데. 막상 시간만 많아지니 당황스럽더라. 친구들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매일 씩씩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기분.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꾸역꾸역 새 직장을 알아봤어. 근데 있지, 어차피 떨어질 자기소개서 쓰는 거. 꼭 파도를 거슬러 수영하려는 것처럼 무의미하지 않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누구도 나를 다그치지 않은 덕분이야. 사표를 냈다고 했을 때 가장 의외의 반응을 보였던 건 아빠였어.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가부장 중의 가부장. 고지식하기가 흥선대원군 버금가는 분이셔. 나는 아빠가 퇴사 소식 듣고 화를 낼 줄 알았어. 그따위로 참을성 없이 살 거면 다 때려 치우라고. 차마 맨정신으론 전화할 용기가 안 나서 술까지 마셨다니까?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하더라. 난 거의 울면서 말했어.

“아빠 나 회사 그만뒀어. 미안해… 근데 너무 힘들어서 더 못하겠어”

그때 아빠가 20년 넘게 들어 본 적도 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거야.

“…그래 잘했다. 주말에 집으로 와라” 

잘했다. 사실 벼랑에서 떨어진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 이미 손을 놓아 버린 사람한테 “조금만 더 버티지…”라고 말해 뭐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조건적인 응원뿐이야. 그 응원이 차곡차곡 쌓여야,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구덩이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내가 우리 아빠의 응원을 딛고 여기로 올라온 것처럼. 

나는 친구가 스스로 구덩이에서 나오는 그 순간까지 말해 줄 거야. 잘했다고. 잘 될 거라고. 야 인생 뭐 있냐. 그깟 회사 포기할 수도 있지. 괜찮아. 우리 아직 망하지 않았어.  



+사족이지만, 내 주변을 보니 첫 직장에서 도망친 사람들… 다들 잘만 살고 있더라. 먼저 ‘글 쓰는 일은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던 나는 두 번째 직장인 대학내일에서 삼년째 글을 쓰고 있고. 퇴사 후 일년 넘게 취직이 되지 않아 절망하던 친구는, 지금 유명한 영화 잡지의 기자가 됐어. 그뿐인가 우리 팀장님도,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도 첫 직장에서 실패했어. 회사 다니는 것도 어찌 보면 연애랑 비슷한 것 같아.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그 사람이 영원히 혼자 늙어 죽으라는 법은 없어.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해, 이유는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